스크린 중독 시대, 영화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신작 'Good Luck, Have Fun, Don't Die'가 스마트폰 중독과 디지털 웰빙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 질문들
평균 4시간 17분. 한국인이 하루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깨어있는 시간의 4분의 1을 작은 화면에 빼앗기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스트레스만 늘리는 뉴스를 무한정 스크롤하거나, 아무 의미 없는 숏폼 영상에 빠져드는 게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멈추지 못한다.
할리우드가 그린 '스크린 종말론'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신작 'Good Luck, Have Fun, Don't Die'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스크린에 중독된 인류가 맞닥뜨린 묵시록적 미래에서, 한 남자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 SF 영화다. 제목부터 게임 용어를 차용해 우리 시대의 디지털 문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우리가 '나쁘다고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디지털 습관이 결국 어디로 이어질지에 대한 경고다. 특히 극도로 온라인화된 사회가 건강한 행동을 오히려 방해하는 역설적 상황을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디지털 패러독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한국 사회에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일상의 모든 영역을 장악한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업무는 카카오톡으로, 쇼핑은 쿠팡으로, 정보 검색은 네이버로 이뤄지는 생태계에서 '디지털 디톡스'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을까?
더 복잡한 건 교육 현장이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학생들의 스크린 노출 시간은 급격히 늘었다. 부모들은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려 하지만, 정작 숙제와 학습 자료는 모두 디지털 플랫폼에 있다. 이런 환경에서 '건전한 스크린 사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처럼 느껴진다.
기업들의 딜레마
흥미롭게도 기술 기업들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 애플은 '스크린 타임' 기능을, 구글은 '디지털 웰빙' 도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모순이다. 사용자의 관심과 시간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것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들이, 동시에 '적게 사용하라'고 권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메타(페이스북)의 경우 더욱 복잡하다. 회사 내부 연구에서 자사 플랫폼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더 몰입도 높은 기능들을 출시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주주 이익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개인의 의지 vs 시스템의 힘
버빈스키 감독의 영화가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스크린 중독은 정말 개인의 의지력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 자체의 문제일까?
행동경제학자들은 후자에 무게를 둔다. 스마트폰 앱들은 도파민 루프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됐고, 인간의 뇌는 이런 자극에 저항하기 어렵게 진화했다. '의지력'만으로 해결하라는 것은 마치 중독자에게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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