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홍역이 미국에 '정착'했다
미국에서 홍역이 26년 만에 다시 토착화되면서 공중보건 정책과 백신 접종률 하락이 불러온 결과를 분석한다
762명. 지난해 텍사스에서 시작된 홍역 감염자 수다. 하지만 이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700명이 추가로 감염되며, 미국은 30년 만에 최대 규모의 홍역 확산을 겪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바이러스가 이제 미국 땅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6년 만의 역주행
2000년부터 미국은 세계보건기구로부터 '홍역 퇴치국' 지위를 인정받아왔다. 이는 12개월 연속으로 홍역이 지역사회에서 전파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난해 2,200명 이상이 홍역에 감염되면서, 1991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에모리대학 공중보건학과의 로버트 베드나르치크 교수는 "텍사스, 유타, 애리조나,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발병이 모두 별개의 해외 유입이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들 지역에서 발견된 홍역 바이러스가 동일한 계통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감염자들의 이동이다. 홍역은 전파력이 극도로 강해 감염자 한 명이 12-18명을 감염시킬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주 경계를 넘나들며 여행하면서, 홍역이 전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의 빈 구멍들
하지만 홍역의 '토착화'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워싱턴대학의 파비트라 로이초두리 교수는 "바이러스 유전자 서열을 비교해야 하는데, 홍역은 변이 속도가 느려 지역 간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홍역 사례를 심각하게 과소집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대학의 헬렌 추 교수는 "홍역 초기 증상은 발열과 기침으로 감기와 구분하기 어렵고, 발진도 다른 질병과 비슷해 놓치기 쉽다"고 말한다.
특히 백신 접종률이 낮은 지역사회에서는 의료 접근성도 제한적이다. 백신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가정들은 공중보건 당국의 역학조사에도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데이터 사각지대'가 바이러스 전파 경로 추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정치가 된 공중보건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은 논란을 키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텍사스 발병 초기 질병통제예방센터의 현지 소통을 지연시키고, 연방 지원금 지급을 두 달간 보류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는 14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발병 시작 후 몇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랄프 에이브러햄 부국장은 "미국이 홍역 퇴치국 지위를 잃는 것은 국경이 다소 개방적이고 국제여행이 활발한 상황에서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특정 지역사회가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덧붙였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장관은 수십 년간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이미 반박된 주장을 반복해왔다. 행정부는 백신의 효과는 축소하면서 홍역 치료에서 영양 보충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길목에서
오는 4월, 범미보건기구는 미국의 홍역 퇴치국 지위를 재검토할 예정이다. 이미 텍사스, 뉴멕시코, 유타, 애리조나, 사우스캐롤라이나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전역에서 동일한 홍역 변종이 발견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존스홉킨스대학 공중보건학과의 윌리엄 모스 교수는 "유전자 서열이 얼마나 달라야 '다른'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결국 전문가의 몫"이라고 말한다. 지위 박탈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은 이미 수년간 악화되는 홍역 상황을 겪고 있다.
백신 접종률 하락과 함께 발병 규모는 커지고 빈도는 잦아졌다. 한 분석에 따르면 이 규모의 홍역 발병은 1,00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발생시킨다. 면역력이 더 약해진다면, 홍역은 전국을 더욱 쉽게 휩쓸 것이다. 각 지역의 발병이 서로 연결돼 그 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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