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잃은 부모는 왜 조용히 사라지는가
작가 다니엘 크리튼든이 딸 미란다를 잃은 후 쓴 회고록 『슬픔으로부터의 특파원 보고』를 통해, 자녀 사별이라는 가장 고독한 형태의 슬픔과 우리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들여다본다.
체크아웃 카운터에서 직원이 묻는다. "오늘 어떻게 지내셨어요?" 딸이 죽은 지 몇 주가 지났다. 당신은 잠깐 멈춘다. 말해야 할까, 말지 말아야 할까. 결국 "그냥 그래요"라고 답한다.
이 짧은 침묵 속에, 자녀를 잃은 수백만 명의 부모들이 살고 있다.
"나는 슬픔을 안다고 생각했다"
작가 다니엘 크리튼든 프럼은 2024년 2월, 딸 미란다를 잃었다. 향년 32세. 브루클린 하이츠의 아파트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었다. 미란다는 2018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10시간의 수술을 버텨냈던 사람이었다. 토론토에서 TV 프로듀서로 일했고, 이스라엘로 건너가 패션 모델로 활동했으며, 텔아비브에서 하마스 로켓 공격을 피한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헤치고 살아남았던 딸이, 서른두 살에 사라졌다.
크리튼든은 곧바로 펜을 들었다. 저널리스트 집안에서 자란 본능이었다. 아버지는 토론토 선의 창간자였고, 그녀 자신도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부터 기자로 일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2026년 5월 5일 출간된 『슬픔으로부터의 특파원 보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통과한 한 어머니의 여정(Dispatches From Grief)』이다. 남편 데이비드 프럼 — 더 애틀랜틱 수석 기자 — 과의 팟캐스트 대화에서, 그녀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전쟁 특파원처럼 느꼈어요. 원치 않게 '슬픔의 땅'으로 추방된 특파원. 그래서 그냥 보고해야 했어요."
슬픔에도 계급이 있다
크리튼든이 책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슬픔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다. 부모를 잃는 것과 자식을 잃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뇌가 준비하는 상실이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고,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자식의 죽음은 우주의 순서를 거스른다. 부모의 뇌는 이 가능성을 위한 서랍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자녀 사별 부모들은 이중으로 고립된다. 슬픔 자체의 고통 위에, 그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고독이 덧씌워진다. 크리튼든은 말한다. "슬픔 책을 마구 읽었어요. 치료법을 찾으려고. 언제 이 고통이 끝나냐고. 답: 끝나지 않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책은 '극복'을 목표로 해요. '받아들임'의 단계에 이르면 괜찮아질 거라고. 그게 저한테는 완전히 거짓말처럼 느껴졌어요."
그녀가 초고를 공유한 어머니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답장했다. "이제 사람들한테 보여줄 게 생겼어요." 이 한 문장이 책의 존재 이유를 압축한다. 슬픔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건네주는 것.
"당신은 파티의 유령이 된다"
자녀를 잃은 부모가 사회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두 사람은 "파티의 유령"이라고 불렀다. 초기의 충격이 가라앉으면, 주변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당신은 돌아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계속 슬픔을 내보일 수도 없다. 모임에 가면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사람이 된다. 가지 않으면 점점 더 혼자가 된다.
"아이가 몇 명이에요?"라는 질문은 예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질문이었다. 이제는 가장 위험한 질문이 됐다. 세 명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사실대로 말하면 대화가 폭탄을 맞는다. 크리튼든은 말한다. "브루클린 호텔 체크인에서 직원이 계속 물어봤어요. 관광? 출장? 쇼 보러 왔어요? 결국 말했죠. '딸 아파트를 정리하러 왔어요. 딸이 죽었거든요.' 그 직원은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말했어요. '미란다, 더 좋은 곳에 있겠죠?' 저는 대답했어요. '글쎄요, 브루클린 하이츠 원베드룸도 꽤 좋은 곳이었는데요.'" 뉴욕에서는 부동산 논리가 신학을 이긴다.
이런 장면들이 책에서 드문드문 웃음을 만들어낸다. 크리튼든은 원래 "재미 장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친구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여성은 남성보다 덜 웃기다"는 도발적인 글을 쓴 후, 다니엘만은 예외라고 인정했다. 그 유머 감각이 이 책에도 살아있다. 셰익스피어 비극 속 취한 경비병들처럼 — 가장 어두운 장면 직후에 찾아오는 짧은 숨통.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슬픔
크리튼든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별도로 쓴 글에서 다룬 주제가 있다. 디지털 사후 세계. 예전에는 고인의 물건을 상자에 담아 선반에 올려두면 됐다. 지금은 다르다.
페이스북이 2018년 미란다와 함께한 사진을 "추억"으로 띄운다. 차 블루투스가 여전히 "미란다의 아이폰에 연결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연락처 즐겨찾기에 딸 이름이 있다. 크리튼든은 이것들을 "감정적 IED(급조 폭발물)"라고 부른다. 아무 예고 없이 터진다.
아이러니는 이렇다. 이 회사들은 고인의 사진을 무단으로 들이밀면서, 정작 유족이 원하는 데이터는 내주지 않는다. 프럼은 법원 명령을 받아 애플 iCloud 사진에 접근하는 데 수개월과 상당한 비용을 썼다. 결과물의 상당수는 미란다가 찍은 강아지 링고 사진이었다. "링고 사진은 이미 충분히 있었는데." 두 사람은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딸이 마지막 순간 911에 전화했는지, 누군가에게 연락했는지 영영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있다.
살아남는다는 것
크리튼든은 책에서 자신이 "살아있는 땅에 머물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살을 실행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고통을 계속 견디느니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그것이 살아있는 다른 자녀들을 두고 떠나겠다는 뜻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구에 따르면 자녀를 잃은 부모, 특히 어머니의 사망률은 사별 후 5년 이내에 유의미하게 높아진다. 자살, 중독, 혹은 단순히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으로. 몸 자체가 달라진다. 신경계가 흔들린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몸이 둔해지고, 사고가 잦아진다.
두 사람의 생존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었다. 강한 결혼 관계. 아들 나트의 한마디 — "미란다의 기억에 우리 가족이 무너지는 것보다 나쁜 건 없어." 그리고 프럼이 아내를 "지구로, 삶으로" 계속 끌어당긴 것. 프럼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남성은 일에 몰두하는 방식으로 슬픔을 회피하기 쉽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관한 기사를 쓰는 일주일은 완전한 평화였다. 하지만 그 탈출이 아내를 혼자 남겨두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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