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아일리시의 한 마디가 불러온 좌파의 자기모순
빌리 아일리시의 육식 비판 발언이 불러온 인터넷 논쟁. 진보 진영의 반응이 드러낸 '고기 패러독스'와 정치적 슬로건 뒤에 숨은 인지부조화를 분석한다.
"고기를 먹으면서 모든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가 Elle 매거진 인터뷰에서 던진 이 한 마디는, 예상대로 인터넷을 불태웠다. 예상 밖이었던 건 불을 지핀 쪽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4월 28일, 빌리 아일리시는 영상 인터뷰에서 "육식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고기를 먹을 수 있고, 동물을 사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다는 안 된다." 논리적으로는 꽤 정교한 주장이다. '모든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일부 동물을 먹는 건 모순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연간 평균 37마리의 동물을 먹는다. 새우까지 포함하면 174마리로 늘어난다. 그리고 그 동물의 99%는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길러진다. 아일리시의 발언은 이 현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데 반발이 쏟아진 곳은 보수 진영이 아니었다. X(구 트위터)에서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비판 댓글들은 대부분 아일리시와 같은 진보적 성향의 사용자들에게서 나왔다.
진보 진영은 어떻게 반박했나
가장 많은 공감(13만 건 이상)을 받은 반응은 이누이트 공동체의 해양 포유류 사냥 다큐멘터리를 언급하며 "백인 비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게시물(8만 건 좋아요)은 "비건이 먹는 채소도 착취 노동으로 수확된다"며 "동물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반자본주의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들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점투성이다.
이누이트 사냥 문화는 분명 존중받아야 하지만, 아일리시의 발언은 명백히 공장식 축산을 소비하는 평균적인 미국 소비자를 향한 것이었다. 채소 수확 노동 착취 문제는 실재하지만, 비건 식단의 핵심은 채소가 아니라 콩·렌틸·두부·템페 같은 식물성 단백질이며 이것들은 대부분 기계로 수확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끝나면 동물 학대도 끝난다"는 주장은 동독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20세기 후반 공장식 축산을 적극 도입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무너진다.
'고기 패러독스'라는 이름의 심리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고기 패러독스(meat paradox).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동물을 먹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지부조화,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동원되는 각종 합리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흥미로운 건 이 합리화가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른 언어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은 "신이 인간에게 동물을 주셨다" 혹은 "개인의 자유"를 내세운다. 진보 진영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윤리적 소비는 없다"거나 "비거니즘은 식민주의적"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포장지만 다를 뿐, 두 경우 모두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지 않기 위한 회피다.
"자본주의 하에서 윤리적 소비는 없다"는 슬로건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말이 실천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결국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기 쉽다. 하지만 10마리의 동물을 소비하는 삶은 174마리를 소비하는 삶보다 분명히 덜 해롭다. 그 차이는 어떤 경제 체제에서도 존재한다.
왜 지금, 왜 진보 진영인가
이 논쟁이 흥미로운 건 단순히 비건 대 육식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이 동물권 문제에 특히 불편함을 느끼는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미국 육류 산업은 진보가 우려하는 거의 모든 문제와 교차한다. 도축장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직종 중 하나이며, 이민자 노동자 비율이 높고 노조 탄압이 빈번하다. 공장식 축산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20%를 차지하고, 미국 수질오염의 최대 원인이다. 대형 축산 시설은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들어서며, 육류 기업들은 압도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고 농장 내부를 취재하는 언론을 막는 법을 로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보 진영 사람들이 동물권 문제에 냉담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이유는, 결국 이 문제가 '개인의 책임'을 묻는 영역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진보적 사회 운동의 언어는 구조와 시스템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개인의 식단 선택을 문제 삼는 것은 그 문법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구조적 언어가 개인적 회피를 위한 방패로 전용된다.
본 콘텐츠는 AI가 원문 기사를 기반으로 요약 및 분석한 것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원문 확인을 권장합니다.
관련 기사
대중문화의 선악 구도는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결속을 위해 만들어진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다. 이 프레임이 우리의 도덕 감수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살펴본다.
미디어 비평가 메건 가버의 신간 《스크린 피플》은 인터넷 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서로의 구경꾼으로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외로움, 불신, 냉소의 뿌리를 파헤친다.
영국 의회가 2009년 이후 출생자에게 담배 판매를 영구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중보건과 개인의 신체 자율권, 어디까지가 국가의 권한인가?
105년 역사의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가짜뉴스'라 불러온 언론과 한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견
이 기사에 대한 생각을 나눠주세요
로그인하고 의견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