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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미국 분열과 2026년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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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미국 분열과 2026년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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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직전 미국의 정치적 분열과 제도 붕괴 위기. 167년 전 애틀랜틱의 창간 철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1857년, 미국에서 기묘한 소문이 돌았다. 노예제를 강력히 옹호하던 조지아 상원의원 로버트 툼스가 보스턴에 와서 "번커힐 언덕 아래에서 자신의 노예들 점호를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소문의 진위는 불분명했다. 툼스가 반노예제 성향의 보스턴 시민들을 도발하려고 퍼뜨린 것인지, 아니면 보스턴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악몽인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적이고 불안하며 그럴듯한 이야기가 번지는 건 정치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사회의 전형적 증상이었다.

분열의 징조들

바로 이런 혼란 속에서 애틀랜틱이 창간됐다. 1857년 말, 아무도 3년 후 연방이 붕괴하고 4년 후 남북전쟁이 터질 줄 몰랐지만, 불길한 징조들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멕시코-미국 전쟁으로 서부 영토에 노예제가 확산될 위기가 커졌다. 북부에서 도망친 노예들이 다시 붙잡히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1854년 캔자스에서는 노예제를 둘러싸고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1856년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하원의원이 상원 본회의장에서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찰스 섬너를 지팡이로 구타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결정타는 1857년 3월 연방대법원의 드레드 스콧 판결이었다. 흑인의 시민권을 부정하고 의회의 노예제 확산 제한 권한마저 무력화시킨 것이다.

제도의 변질

애틀랜틱 두 번째 호에 실린 에드먼드 퀸시의 7,600자 분량 에세이 "어디서 끝날 것인가?"는 당시의 위기감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는 "노예권력 음모론"을 제기했다. 남부 과두정치인들과 그들에게 굴복한 북부 정치인들(당시 용어로 '도우페이스')이 정부 모든 층위를 장악해 노예제를 전국으로, 나아가 해외로까지 확산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퀸시가 지적한 핵심은 변화의 속도와 양상이었다. "한때 은밀한 회의실에서 속삭이던 것이 이제는 옥상에서 공공연히 외쳐진다"고 그는 썼다. 불법적이고 은밀하던 것들이 이제는 "대낮에, 대포 앞에서, 국가의 칼날 아래" 당당히 이뤄지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술집이나 해적소굴에서나 들을 수 있던 교리와 계획들이 이제는 최고법원의 공식 판결로 권력을 입고, 백악관의 신탁소에서 아첨스럽게 되풀이되고 있다.

문화와 언론의 위축

정치적 변질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북부 출판사들은 남부 노예주들의 눈치를 보며 문학 작품을 검열했다. 반노예제 출판물은 남부 지역 우편 발송이 금지됐다. 테네시의 한 목사는 노예 구타를 비판했다가 교회에서 쫓겨났고, 버지니아 정치인은 북부 정치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고향 출입이 금지됐다.

"노예제의 해로운 그늘 아래서 문학은 죽어가고 예술은 살 수 없다"고 퀸시는 진단했다.

희망의 근거

그러나 퀸시는 절망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음모의 성공"이 "최종적이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노예권력의 극단적 행동은 점점 강해지는 반대 세력에 대한 반응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주목한 건 당시 새로 결성된 공화당이었다. 1856년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강력한 반노예제 연합을 구축한 공화당의 "항의의 천둥소리가 폭군들의 심장에 공포를 심어주었다"고 그는 믿었다.

퀸시는 공화당의 승리로 "노예권력"이 종식되고 "진정한 공화국의 이상"이 실현돼 미국이 "경고가 아닌 모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그 승리가 파괴적인 전쟁을 통해 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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