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달리아, 78년간 소비된 죽음
1947년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이 어떻게 진실보다 신화가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타인의 비극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
78년 전, 22세 여성 한 명이 로스앤젤레스의 빌트모어 호텔에서 내렸다. 엘리자베스 쇼트는 그날 밤 자매를 만날 예정이라고 했지만, 다시는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6일 후 공터에서 발견된 그녀의 시신은 충격적이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였다. 엘리자베스 쇼트라는 한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고, '블랙 달리아'라는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윌리엄 J. 만의 신작 『블랙 달리아: 살인, 괴물, 그리고 20세기 중반 할리우드의 광기』는 이 현상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제부터 피해자의 진실보다 추측을 더 선호하게 되었을까?
신화 제조 공장, 언론
1947년 전후 로스앤젤레스는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1945년부터 1946년까지 남성 살인율이 26.8% 증가한 반면, 여성 살인율은 52.9%나 급증했다. 이런 불안감은 신문 판매부수와 직결되었고, 언론은 '블랙 달리아' 사건을 최대한 선정적으로 포장했다.
문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시신이 발견된 곳을 "연인들의 은밀한 장소"로 묘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증인의 증언을 만들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가짜 인터뷰까지 신문에 실렸다.
래리 하니쉬 전 LA타임스 기자는 수십 년간 이런 오류들을 추적해왔다. 그가 발견한 것은 놀라웠다. 쇼트가 성매매업에 종사했다는 주장부터 성적 장애가 있었다는 추측까지, 대부분이 근거 없는 창작이었던 것이다.
끝없는 용의자 게임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지난 78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범인'을 지목해왔다. 스티브 호델은 아버지 조지 호델이 범인이라며 2003년 책을 출간했고, 나중에는 그가 조디악 킬러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재니스 놀튼은 자신의 아버지를 지목했고, 작년에도 새로운 '결정적 증거'를 내세운 책이 나왔다.
만 작가는 이런 추측들을 하나씩 반박하면서도, 결국 자신도 같은 함정에 빠진다. 그는 쇼트의 남자친구였던 마빈 마골리스를 새로운 용의자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미 초기 수사에서 제외된 인물이다.
작가 스스로도 이런 딜레마를 인정한다. "그녀는 단순히 취약한 젊은 여성이었고, 심각한 폭력적 정신병리를 가진 누군가와 마주쳤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결론으로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
한국의 미제사건 열풍
이런 현상이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나 이춘재 사건 등이 수십 년간 추측과 소설의 소재가 되어왔다. 최근 넷플릭스의 트루크라임 콘텐츠 인기나 각종 유튜브 채널의 미제사건 분석 영상들을 보면, 우리도 '진실'보다는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것 같다.
특히 젊은 여성 피해자의 경우 더욱 그렇다. 피해자의 실제 삶은 사라지고,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순수한 희생자이거나 의혹스러운 과거를 가진 여성이거나, 극단적인 두 이미지 중 하나로만 기억된다.
해답 없는 이야기의 힘
작년 9월, 텍사스 요구르트 가게 살인사건이 34년 만에 유전자 분석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진범을 찾는다고 해서 그동안의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들의 상처는 여전했다.
하니쉬 기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추측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이것은 결말이 없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게 핵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명확한 답이 없는 이야기에 더 매혹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사람은 사라지고 신화만 남는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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