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제국도 안 된다—그 약속이 무너지고 있다
80년간 세계 평화를 지탱해온 두 원칙—전쟁 금지와 제국주의 종식—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유엔의 침묵, 강대국의 침략,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린 역사에 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80년 동안, 인류는 두 가지 약속 위에서 살아왔다. 강대국끼리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제국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1억 명이 죽고 나서야 얻어낸 약속이었다. 지금, 그 약속이 동시에 깨지고 있다.
‘긴 평화’의 토대가 흔들리다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전직 유엔 고위 관리이자 우 탄트와 잊혀진 평화의 탐구 저자인 탄트 민트-우는 현재의 위기를 단순한 미국의 후퇴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붕괴로 설명하는 것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그가 말하는 ‘긴 평화(the long peace)’의 실제 기둥은 NATO도, 미국의 군사 패권도 아니었다.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는 도덕적 확신, 그리고 제국주의는 끝나야 한다는 집단적 기억이었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된 유엔 헌장은 이 두 확신에 정치적 형태를 부여했다.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핵보유국들은 군비를 현대화·확장하고 있으며, 전략적 군비통제 협정들은 하나씩 소멸했다.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수단, 이란—어느 곳에서도 유엔 외교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탄트 민트-우는 이것을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상상력의 위기’라고 부른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제국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집단적으로 잊어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유엔이 한때 해냈던 일
유엔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무력했던 것은 아니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때, 스웨덴 출신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는 하룻밤 사이에 유엔 최초의 평화유지군을 이집트에 배치했다. 프랑스, 이스라엘, 영국이 이집트를 침공한 뒤 체면을 잃지 않고 물러날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준 것이다. 1958년 레바논에서는 유엔 감시단이 미군 철수의 조건을 조성했다. 사무총장에게 군대는 없었지만, 전 세계가 인정하는 중재자의 도덕적 권위가 있었다.
같은 시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이 뉴욕 유엔 본부에 물밀듯 도착했다. 이들은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과 ‘인간 존엄’ 언어를 서방 저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급진적으로 해석했다. 1960년 유엔 총회는 ‘아프로-아시아 블록’의 주도로 식민지 독립 선언을 채택했다. 제국의 종식이 단지 유럽 국기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간섭과 경제적 지배로부터의 실질적 해방을 의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시기 유엔은 완벽한 기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안에 살아있는 확신이 있었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탄트 민트-우의 진단에서 가장 도전적인 부분은 이것이다. 그는 유엔 안보리 개혁 같은 제도적 처방을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제도 이전에 정치라는 것이다. ‘전쟁은 안 된다, 제국은 안 된다’는 확신을 공개적으로 옹호할 정치 지도자, 그 확신을 행동으로 보여줄 새로운 유엔 사무총장, 그리고 그것을 요구하는 시민 사회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는 지금 부상하는 세계—어떤 단일 강대국도 자신의 선호대로 국제 정치를 조직할 수 없는 세계—가 미국 패권 시대(1990~2020년대)보다 오히려 1955년에서 1990년 사이의 유엔 시대를 더 닮았다고 본다. 역설적이게도, 다극화가 진행될수록 유엔 사무총장 같은 중립적 중재자의 역할이 다시 필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이 그 선례가 될 수 있다. 교전 당사자들이 지쳐가고 확전도 두렵지만 출구를 찾지 못할 때—과거 유엔 사무총장들이 반복해서 증명했듯—중립적 중재자가 ‘체면을 살려주는 출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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