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산불 전담 기관을 만드는 진짜 이유
미국 내무부가 새로운 산불청 창설을 추진하는 배경과 한계, 그리고 변화하는 재난 대응 패러다임의 의미를 분석한다.
693만 헥타르. 미국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토지 면적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땅에서 산불이 나면 누가 책임지고, 누가 돈을 내고, 누가 지휘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2025년 로스앤젤레스 산불이 보여준 것처럼, 미국의 산불 대응은 여전히 관료주의의 덫에 갇혀 있다.
흩어진 책임, 늦어지는 대응
미국 내무부가 지난달 새로운 산불청(Wildland Fire Service) 창설을 발표한 배경에는 복잡하게 얽힌 산불 대응 체계가 있다. 현재 연방 차원에서만 산불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다.
내무부 산하에는 산불청, 국립공원관리청, 토지관리청이 각각 산불 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연방 산불 진압 업무의 70-75%는 농무부 산하 산림청이 담당한다. 문제는 산불의 80%가 연방 토지가 아닌 곳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결국 초기 대응은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맡아야 하는데, 연방기관들 간의 협조 체계는 미흡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행정명령에서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너무 많은 경우에서 산불에 대한 느리고 부적절한 대응은 무모한 잘못된 관리와 준비 부족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연방정부는 지난 5년간 매년 평균 2조 7천억원을 산불 진압에 썼다. 하지만 여러 기관에 분산된 예산과 인력으로는 갈수록 거세지는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시도, 오래된 한계
내무부는 산불청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불을 끄는 것뿐만 아니라 연료 관리와 화재 피해 지역 복구까지 담당할 예정이다. 지휘관으로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베테랑 소방서장 브라이언 페네시를 임명했다.
하지만 의회가 예산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내무부가 요청한 7조 4천억원 규모의 예산이 1월 지출법안에서 제외됐다. 여러 연방 부처에 걸친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내무부는 당분간 내부 조직 개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산불청이 진압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우려다. 소방관 안전윤리생태연합의 티모시 잉갈스비 국장은 "이것은 소방 부대이고, 그것이 문제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로 고온 건조한 강풍 조건이 더 자주 발생하는데, 산불만 기다리고 있으면 절대 문제를 앞서갈 수 없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산불, 바뀌어야 할 대응
산불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 오리건주립대 크리스토퍼 던 교수는 "30년 전과 비교해 산불이 더 빠르고 강렬하며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 조건이 산불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도시형 산불이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 2025년 로스앤젤레스 산불처럼 산림이 아닌 주거지역에서 시작되어 건물 자체가 연료가 되는 화재다. 기존 산림 소방관들은 건물 진입 훈련을 받지 않았고, 도시 소방관들은 대규모 산불 진압 경험이 부족하다.
정부회계감사원은 2019년 연방 토지 중 1억 에이커(약 4천만 헥타르)에서 화재 위험 감소 작업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매년 실제 처리되는 면적은 100만-300만 에이커에 불과하다. 예방보다 진압에 치중하는 현재 체계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정치적 도구가 될 위험
트럼프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 산불 이후 캘리포니아에 대한 연방 재난 지원금 중단을 위협한 것처럼, 연방 산불청이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전 산림청 연구원 데이비드 칼킨은 "이런 조직이 성공하려면 장기적 비전을 가져야 하고, 지역 상황에 반응해야 하며, 정치적 변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방정부 차원의 조직 개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화재에 취약한 지역의 건축 기준 강화, 방화 건축 자재 사용, 방어 가능한 공간 확보 등은 지방정부와 민간의 역할이다. "공유지 관리만으로는 이런 유형의 사건을 크게 줄일 수 없다"고 칼킨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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