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샤드에서 본 이란 시위의 진실, 트럼프가 놓친 것
2025년 1월 이란 마샤드 시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복잡한 현실. 단순한 반정부 시위가 아닌 경제적 절망과 정치적 분열이 얽힌 이야기
400명이 죽었다는 공식 발표와 100만 명이 시위했다는 트럼프의 주장 사이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아프가니스탄 출신 연구자가 이란 마샤드에서 직접 목격한 시위의 실상은 어느 쪽 서사와도 달랐다.
지난 1월 9일부터 이란 전역을 휩쓴 반정부 시위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란 제2의 도시 마샤드가 시위대에 "함락"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 마샤드에 머물고 있던 한 연구자의 증언은 훨씬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경제적 절망에서 시작된 불만
아프간전략연구소의 소장으로 마샤드를 방문한 저자는 12월 26일부터 1월 14일까지 현지에 머물며 시위의 전개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 출신인 그에게 마샤드는 같은 페르시아 문화권으로서 친숙한 도시였다.
시위는 12월 중순 경제적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이란 정부가 단행한 경제 개혁으로 기본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고, 이미 30%의 이란인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던 상황에서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되었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심장외과 의사 출신답게 이를 "아픈 경제에 대한 필요한 수술"이라고 표현했다.
초기 시위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저자가 목격한 아흐마드아바드 거리와 바킬아바드 대로의 시위는 소규모였고,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이 교통 체증 속에서 구호를 외치는 정도였다. "흥분한 스포츠 팬들로 오인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그의 표현처럼, 이들의 행동은 산발적이고 쉽게 해산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1월 8일 밤, 상황이 급변하다
상황은 1월 8일 저녁 극적으로 변했다. 레자 팔라비 전 왕세자가 현지시간 오후 8시 전국적 시위를 촉구하는 영상을 발표했고,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의 도발적 게시물과 겹쳤다. 폼페이오는 시위대 사이에 모사드 요원들이 섞여 있다고 암시하기까지 했다.
오후 6시경, 모든 인터넷과 전화 서비스가 차단되었다. 역설적으로 이 차단은 저자에게 "이상하게도 해방감"을 주었다. 편향된 뉴스와 소셜미디어 필터 대신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정 직후, 저자는 친구와 함께 시내를 돌아다녔다. 아흐마드아바드 거리와 바킬아바드 대로에서는 불타는 버스와 자동차, 파괴된 육교와 신호등을 목격했다. 타바르시 대로 일대는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공공건물이 파손되고 거리는 잔해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오토바이를 탄 진압경찰과 소방서, 시청 직원들만이 거리를 청소하고 불을 끄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구급차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100만 명' 주장은 과장
다음 날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선동꾼들"에 대한 강경 대응을 경고하는 연설을 했다. 국영 매체는 논조를 급변시켜 이전까지 "사회경제적 위기"로 표현하던 것을 "무장 반란"으로 규정했다. 시위대는 이제 "테러리스트", "이슬람국가 연계자", "미국이나 시온주의 요원"으로 불렸다.
이 시점에서 트럼프는 마샤드에서 100만 명 이상이 시위하고 있으며 도시가 시위대 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두 번째 주장은 부분적으로 맞았다. 진압경찰과 사복 보안요원들이 일시적으로 철수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주장은 "매우 의심스러웠다". 저자는 약 10개 시위 지역 중 4곳을 직접 방문했는데, 이들은 제한된 구역에서 3-5시간 정도만 지속되었다. "이런 도심 지역에 수만 명의 시위대가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도 무리이며, 100만 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국가의 반격과 희생자들
1월 10일 토요일, 도시는 조용했지만 보안군의 존재감은 훨씬 강화되었다. 목요일 밤 산탄총을 들고 있던 진압경찰들은 이제 AK-47과 중기관총까지 휴대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빵집, 약국, 식료품점 앞에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1월 12일 월요일, 정부는 전국적으로 친정부 시위를 조직했다. 마샤드에서는 이맘 레자 성지 근처에서 낮 시간에 진행되었다. 저자가 성지 내 박물관을 방문하던 중 수천 명이 이맘 레자 대로로 몰려들었다. 순례자, 관광객, 시위 참가자들이 뒤섞인 군중 속에서 반정부 시위 중 사망한 20명의 보안요원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이날부터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마샤드의 일상이 서서히 정상화되면서 국내 인터넷과 전화 서비스가 부분적으로 복구되었다. 하지만 야권 매체와 현지 접촉자들은 대규모 사상자와 체포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저자가 만난 마샤드 시민 중 3분의 2가 죽거나 다친 사람을 개인적으로 안다고 답했다. 레즈반 묘지와 영안실을 방문한 3명의 지인들은 수백 구의 시신이 신원 확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며칠 후 국영 매체는 고위 보안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마샤드와 인근 도시에서 약 400명이 사망했지만, 이 중 80%는 반정부 세력에 의해 "순교"했다고 보도했다.
네 가지 시나리오와 불확실한 미래
이란의 미래에 대해서는 네 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시위대나 외국과의 협상을 거부하는 최고지도자 하에서의 정체 상태다. 둘째는 덩샤오핑 시대 중국과 같은 내부로부터의 변혁적 개혁이다. 셋째는 동독,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와 같은 풀뿌리 비폭력 운동의 최종 승리다. 넷째는 외부 지원을 받은 폭력적 정권 교체다.
각 시나리오는 모두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공화국은 고통을 가하고 흡수하는 비범한 능력을 보여왔다. 혁명 정권의 특성상 반대자들이 가정하는 것보다 폭력에 대한 관용도가 높다.
하지만 한 세기 넘게 이란의 대중 운동들은 반복적으로 더 책임감 있는 거버넌스를 추구해왔다. 2022년의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은 여성 복장 규제 시행에 효과적으로 도전함으로써 주요한 문화적 승리를 거두었다. 실제로 저자는 1월 마샤드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많은 젊은 여성들을 목격했고, 이들이 정부나 보수 사회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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