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AI 칩을 설계하는 시대가 온다
구글 출신 듀오가 창업한 리커시브, 4개월 만에 40억 달러 가치 인정받으며 AI 칩 설계 자동화 도전. 인간이 1년 걸릴 일을 6시간에 해결하는 기술의 의미는?
1년 걸릴 일을 6시간에
구글에서 인간이 1년 넘게 걸려 설계하던 칩을, AI가 6시간에 완성했다. 이 놀라운 결과를 만든 주인공은 안나 골디와 아잘리아 미르호세이니. 구글 브레인에서 같은 날 입사해 같은 날 퇴사한 이 듀오가 창업한 리커시브 인텔리전스가 지난달 300억 달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4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창업 4개월 만의 일이다.
이들의 무기는 '알파 칩'이라는 AI 도구다. 구글의 3세대 텐서 프로세싱 유닛 설계에 실제로 사용된 검증된 기술이다. 하지만 리커시브가 노리는 건 단순한 설계 도구가 아니다. AI가 AI를 위한 칩을 스스로 설계하는, 말 그대로 '자기 진화'하는 시스템이다.
엔비디아도 투자한 이유
흥미롭게도 엔비디아가 리커시브에 투자했다. 보통 AI 칩 스타트업은 엔비디아의 경쟁자가 되려 하는데, 리커시브는 정반대다. 엔비디아, AMD, 인텔 같은 칩 제조사들이 바로 이들의 고객이다.
"우리는 어떤 칩이든 - 맞춤형이든 전통적이든 - 자동화되고 매우 가속화된 방식으로 제작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미르호세이니 CTO의 설명이다. 칩을 만드는 게 아니라 칩을 설계하는 AI 도구를 만든다는 뜻이다.
반도체 설계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의 칩에 수백만에서 수십억 개의 논리 게이트가 들어가고, 이를 실리콘 웨이퍼 위에 정확히 배치하는 일은 인간에게 극도로 복잡한 작업이다. 성능, 전력 효율성, 기타 설계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키려면 전문가도 1년 이상 걸린다.
학습하는 설계자
리커시브의 AI는 '보상 신호'를 통해 설계의 품질을 평가받고, 이를 바탕으로 신경망 매개변수를 업데이트해 더 나은 설계자가 된다. 수천 번의 설계를 거치며 실력이 늘고, 속도도 빨라진다. 더 중요한 건 "서로 다른 칩들 간에 학습한다"는 점이다. 골디 CEO의 말처럼, 한 칩을 설계할 때마다 다음 칩 설계 능력이 향상된다.
한국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이는 중요한 변화다. 설계 시간이 90% 이상 단축된다면, 신제품 출시 주기가 혁신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특히 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설계 속도는 곧 시장 선점력이다.
10배 효율성의 약속
골디는 더 큰 그림을 그린다. "모델에 고유하게 맞춤화된 컴퓨터 아키텍처를 설계할 수 있다면, 총 소유 비용 대비 성능에서 거의 10배 개선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AI 연구소들이 훨씬 효율적인 칩을 설계할 수 있다면, AI 발전이 세계 자원을 그렇게 많이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는 환경 문제로 AI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ChatGPT 같은 대형 AI 모델 훈련에는 엄청난 전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AI가 자신에게 최적화된 칩을 설계할 수 있다면, 같은 성능을 훨씬 적은 에너지로 달성할 수 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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