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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전 흑인 여성 연쇄살인마의 진실, 언론이 만든 괴물
CultureAI 분석

112년 전 흑인 여성 연쇄살인마의 진실, 언론이 만든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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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클레멘타인 바나벳의 고백. 종교적 광신자로 그려진 흑인 여성의 진실과 언론의 선정주의가 만든 신화를 추적한다.

17명을 도끼로 살해했다고 자백한 흑인 여성. 1912년 미국 남부를 공포에 떨게 한 클레멘타인 바나벳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살인은 계속됐다.

112년이 지난 지금, 학자들은 묻는다. 과연 그녀가 진범일까? 아니면 언론이 만들어낸 괴물일까?

도끼 살인마의 공포

1909년 11월부터 1912년 8월까지, 루이지애나와 텍사스 일대에서 끔찍한 연쇄살인이 벌어졌다. 밤의 어둠을 틈타 흑인 가정을 습격하는 범인. 현장에는 항상 도끼가 남겨져 있었고, 어머니와 아이가 반드시 희생자에 포함됐다.

범행 현장은 모두 서던 퍼시픽 철도 선로에서 1마일 이내에 위치했다. 도끼 외에도 다른 무기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의도적으로 잔혹함을 추구했다.

언론은 이 정체불명의 범인을 ‘도끼맨(Axman)’이라 불렀다. 지역 흑인 공동체는 공포에 떨었고,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의문투성이 자백

1912년 4월, 19세 흑인 여성 클레멘타인 바나벳이 4개 가족 살해를 자백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백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있었다.

바나벳이 자백한 살인은 1909년 11월부터 1911년 11월 사이에 일어났다. 문제는 그녀가 1911년 11월 체포된 후에도 4개 가족이 더 살해됐다는 점이다. 감옥에 있던 그녀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단 말인가?

더 기이한 것은 바나벳의 두 번째 자백이었다. 그녀는 후두 의사에게서 부적을 사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 부적 덕분에 들키지 않고 범행할 수 있었지만, 부적을 잃어버려서 자백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딜레마에 빠졌다. 바나벳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살인이 계속됐지만, 모든 범행이 연관되어 보였다. 그들은 바나벳의 ‘종교적 광신’ 주장에 매달렸다.

언론이 만든 악마

1912년 언론은 바나벳을 흑인 보르지아, 광신적 컬트의 지도자, 인신공양 컬트의 여사제라고 불렀다. 그녀가 언급한 교회는 ‘희생 교회(Sacrifice Church)’로 둔갑했고, 불멸을 위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사교 집단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 ‘희생 교회’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언론이 ‘성화된(Sanctified)’ 교회를 ‘희생(Sacrifice)’ 교회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종교적 다양성이 풍부한 곳이었다. 흑인 가톨릭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서아프리카 기원의 부두교후두교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오순절교 역시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종교적 다양성을 언론은 ‘미개함’과 ‘광신’으로 해석했다. 백인 언론에게 흑인 여성의 신앙은 범죄의 동기가 될 뿐이었다.

짐 크로우 시대의 편견

바나벳의 사례는 짐 크로우 시대 흑인에 대한 편견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가 실제로 부적을 믿었을 수도 있고, 성화된 교회에 다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이 곧 살인의 동기라고 단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바나벳은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10여 년 후 석방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유죄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다.

흥미롭게도 현재 미국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는 바나벳과 같은 흑인 여성 연쇄살인범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적 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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