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를 잡는 자가 바다를 지배한다
시진핑이 일대일로 국제항구동맹 추진을 공식화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파나마 운하 위기 속에서 중국의 해양 전략이 가속화되는 지금, 한국 기업과 공급망에는 어떤 의미인가.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지나는 항구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다면, 그 네트워크를 쥔 나라는 무엇을 얻게 될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BRI) 국제항구동맹 창설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최고 이론지 구시(求是)는 2026년 3월 17일, 시 주석이 2025년 7월 1일 비공개 회의에서 한 발언 일부를 공개했다. 그는 "글로벌 해양 거버넌스에 깊이 참여하고, 해양 권익을 단호히 수호하며, 일대일로 국제항구동맹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지금, 이 발언인가
발언 자체는 약 8개월 전 것이지만, 지금 공개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 해운 환경이 동시다발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는 이란 전쟁의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에서는 미국과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파나마는 일대일로의 첫 중남미 회원국이었지만 2025년 재가입을 거부했고, 홍콩 CK허치슨이 수십 년간 운영해온 파나마 운하 양쪽 항구를 둘러싼 갈등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상하이 푸단대학교 국제학 교수 신치앙은 이번 발언이 "베이징의 결의와 전략적 재조정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취약점을 인식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보완하겠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일대일로 항구동맹, 무엇이 달라지나
일대일로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중남미 150개국 이상을 연결하는 중국 중심의 인프라·무역 네트워크다. 이번 항구동맹 구상은 그 해양 버전을 제도화하겠다는 시도다.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연선 국가들과의 협력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한 항구 개발 협력에서 나아가, 공동 운영 기준·정보 공유·비상시 우회 루트 조율까지 아우르는 구조가 만들어질 경우, 중국은 자국 선박과 화물에 유리한 항로 환경을 제도적으로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세계 최대 상품 수출국인 중국이 해운 인프라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는 그림이다.
한국 기업은 어디에 서 있나
한국은 이 지형 변화에서 방관자가 될 수 없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주요 기업의 수출 물동량은 글로벌 해운 루트에 직접 의존한다. 호르무즈 해협 불안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용을 높이고, 파나마 운하 긴장은 북미 수출 일정을 흔든다.
중국이 주도하는 항구동맹이 구체화될 경우, 한국 기업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다. 이 네트워크에 편입하면 물류 효율을 얻을 수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부담이 생긴다. 편입하지 않으면 중국 항구에서의 우선순위가 밀릴 수도 있다. 이미 한국 수출의 약 20%는 중국을 경유하거나 중국 항구를 활용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구조적 취약성이 있다. 그런데 중국이 해양 인프라까지 네트워크화한다면, 다변화의 선택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다른 시각들
중국의 입장에서 이 전략은 방어적이기도 하다. 말라카 해협, 호르무즈, 파나마 등 중국 무역의 핵심 루트 대부분이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것은 오래된 안보 불안이다. 항구동맹은 이 취약성을 줄이려는 현실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시각은 다르다. 중국이 전략적 항구들을 제도적으로 묶어 유사시 경쟁국의 해운을 압박하는 레버리지를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CK허치슨 파나마 항구 문제가 미국에서 민감하게 다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남아·아프리카·중남미의 일대일로 참여국들은 또 다른 셈법을 한다. 항구 개발 자금과 운영 노하우를 얻을 수 있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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