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말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문자 시대의 종말과 구술 문화의 부활. 소셜미디어와 AI가 우리의 사고와 소통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3페이지를 읽고 나면 트위터를 확인한다. 다시 2페이지를 읽고 또 스마트폰을 든다. 이런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의식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디어 이론가들은 이를 '구술성의 귀환'이라고 부른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전 수천 년간 지속된 구술 문화의 특성이 디지털 시대에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고, 소통하고, 정치를 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호메로스와 트럼프의 공통점
도널드 트럼프의 별명 짓기는 거의 예술 수준이다. '졸린 조 바이든', '저에너지 젭', '미니 마이크 블룸버그'. 이런 표현들이 왜 이렇게 강력한 임팩트를 가질까?
20세기 중반 미디어 이론가 월터 옹과 마셜 맥클루한은 놀라운 통찰을 제시했다. 문자가 없던 구술 문화에서 사람들은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것이다. 리듬과 운율, 반복되는 표현, 강렬한 별명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포도주빛 바다', '날랜 발의 아킬레우스' 같은 표현들 말이다.
블룸버그의 팟캐스트 진행자 조 와이젠탈은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가 호메로스적 캐릭터라고 하면 사람들이 반발하지만, 원래 호메로스를 구술로 전한 음유시인들이 바로 트럼프 같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시끄럽고, 관심을 끌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구술 문화에서는 '무거운 캐릭터'가 중요했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케르베로스, 메두사, 제우스처럼 과장되고 기억하기 쉬운 인물들. 현대의 트럼프,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다. 반면 존 F. 케네디나 버락 오바마 같은 '가벼운 캐릭터'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문자가 만든 개인주의, 스마트폰이 파괴한 집중력
문자의 발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구술 문화에서는 모든 학습이 사회적이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혼자 배울 수는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듣고, 함께 연습하고,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문자는 혁명을 일으켰다. 처음으로 혼자 쓰고, 혼자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었다. 뉴햄프셔 대학교의 조슈아 메이로위츠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구술 소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사람들은 더욱 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이 되었다. 추상적 사고가 발달했다. 원형의 소리 세계에서 직선적이고 인과관계적인 사고로, 격자 형태의 도시로 이동했다."
문자는 고독한 사색을 가능하게 했다. 미적분학, 물리학, 양자역학 같은 복잡한 추상적 사고 체계들이 모두 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책을 읽다가 2페이지마다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이는 단순한 주의력 산만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 구조 자체가 다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구술성: 바이럴과 밈의 세계
소셜미디어는 겉보기에는 문자 기반이다. 하지만 그 특성을 자세히 보면 구술 문화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트위터나 틱톡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 즉석에서 반응한다 (구술 문화의 즉시성)
- 바이럴을 만들려 한다 (구술 문화의 전파성)
- 밈과 반복 구조를 사용한다 (구술 문화의 기억술)
- 상대방을 의식하며 말한다 (구술 문화의 사회성)
월터 옹은 구술 문화를 '경쟁적(agonistic)'이라고 표현했다. 온라인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고, 더 재치 있는 답글을 달려고 하고, '좋아요'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 혼자 책을 읽을 때는 어떤가? 저자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 다른 독자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오직 텍스트와 나만의 대화가 있을 뿐이다.
AI는 구술성인가, 문자성인가?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월터 옹은 이렇게 썼다: "문자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설명을 요청할 수 있지만, 텍스트에게 물어보면 똑같은, 종종 바보 같은 답만 돌아온다."
그런데 AI는 다르다. PDF를 업로드하고 클로드에게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가 대화 상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AI와의 대화는 소셜미디어와는 또 다르다. AI는 나를 모욕하지 않고, 밈으로 답하지 않고, 나와 경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네요, 더 탐구해볼까요?"라며 지나치게 순응적이다.
AI와의 대화는 구술적이면서도 내성적이다. 마치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상대방이 있는 느낌. 이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소통일지도 모른다.
한국적 맥락: 카톡방과 유튜브의 시대
한국에서 이런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을 보라. 짧은 메시지, 이모티콘, 즉석 반응. 이 모든 것이 구술 문화의 특성과 일치한다.
유튜브와 틱톡의 부상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않는다. 대신 15초 영상으로 모든 정보를 소비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의식 구조의 변화다.
한국의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인들의 유튜브 채널, 인스타그램 스토리, 실시간 소통. 모든 것이 즉시성과 감정적 호소력을 중시하는 구술 문화의 특성을 보인다.
교육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학생들의 집중력 저하, 긴 텍스트 기피 현상. 이를 단순히 '요즘 애들'의 문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류 의식 변화의 일부로 볼 것인가?
본 콘텐츠는 AI가 원문 기사를 기반으로 요약 및 분석한 것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원문 확인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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