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할 때가 됐다'는 말, 이제 아무도 모른다
평균 은퇴 연령이 57세에서 65세 이상으로 높아진 미국. 더 오래 사는 시대에 '언제 물러날지'를 아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일과 정체성, 고령화 사회의 딜레마를 짚는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그냥 알게 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서 전설적인 패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의 남편이 건네는 이 말은, 수십 년간 우리가 은퇴에 대해 가져온 믿음을 압축한다.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온다는 것. 하지만 그 '순간'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은퇴의 각본이 바뀌었다
1991년, 미국의 평균 은퇴 연령은 57세였다. 20세기 중반의 미국인들에게 은퇴는 비교적 명확한 통과의례였다. 1935년 사회보장법이 통과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업 연금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수십 년 일한 뒤 쉬는 것'은 당연한 보상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15년에서 2024년 사이 33% 이상 증가했다. 2024년 현재 65세 이상 미국인 5명 중 1명이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이 연령대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집단 중 하나다.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기대수명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계속 활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치솟는 생활비, 의료보험, 부양 책임, 부족한 노후 자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이어가는 이들도 많다. AARP의 2024년 조사에서는 50세 이상 미국인 4명 중 1명이 '평생 은퇴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계속 일하라'와 '자리를 비워라' 사이
사회가 보내는 메시지는 모순적이다.
한쪽에서는 노인들에게 '활기차게, 생산적으로, 건강하게' 나이 들라고 권한다. '성공적 노화(successful aging)'라는 개념은 노동시장 참여와 독립성, 목적의식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영향력 있는 자리를 유지하는 고령자들을 향해 '왜 아직도 버티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2026년 5월, 하버드 법대 교수 새뮤얼 모인은 《하퍼스 매거진》 커버스토리 "The Old Guard"에서 미국이 '노인지배(gerontocracy)'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고령 세대가 정치, 부, 제도를 과도하게 장악하면서 젊은 세대가 경제적·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놓치는 것도 있다. '물러나지 않는' 고령자 중 상당수는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재정적 불안과 생존의 문제로 일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일은 돈이 아니다, 적어도 전부는 아니다
노인학, 재활심리학, 직업심리학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지적한다. 일은 소득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특히 노년기에 일은 자아 정체성, 사회적 연결, 일상의 구조, 삶의 의미를 유지하는 핵심 통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일 밖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던 공간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시민단체, 볼링 리그, 종교 공동체, 지역 모임 같은 전통적인 사회적 유대의 장이 수십 년에 걸쳐 쇠퇴했다. 그 빈자리를 일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이제 주요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된다. 일터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보이고, 필요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가 됐다.
물론 은퇴가 스트레스 감소와 여가 확대로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직업 정체성이 강했던 사람일수록, 은퇴 이후 고립감이나 목적 상실을 경험할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더 무겁다
이 딜레마는 한국에서 더욱 날카롭게 작동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인 나라 중 하나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를 넘어 공식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동시에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은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정년'은 법적으로 60세이지만, 실제로는 50대 중반에 대기업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재취업이나 자영업으로 이어지는 '100세 시대'의 긴 여정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언제 물러날 것인가'보다 '어떻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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