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없이도 AI가 돌아간다
스노우플레이크가 AWS와 6조원 규모 5년 계약을 체결했다. 핵심은 엔비디아 GPU가 아닌 아마존 자체 칩 그라비톤이다. 클라우드 빅3의 자체 칩 경쟁이 AI 인프라 판도를 바꾸고 있다.
스노우플레이크가 창업 이래 13년 동안 AWS 마켓플레이스에서 벌어들인 총매출은 70억 달러다. 이번 주 발표된 새 계약 규모는 60억 달러, 단 5년 안에. 숫자가 말하는 건 단순한 클라우드 거래가 아니다.
계약서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
스노우플레이크는 기업 데이터 창고(Data Warehouse) 시장의 강자다. 수많은 기업의 데이터가 이 플랫폼 위에 쌓여 있다. 그리고 스노우플레이크는 2년 전부터 Cortex AI라는 AI 빌딩 툴을 제공해왔다. 자연어로 데이터베이스에 질문을 던지면 알아서 쿼리를 짜주고, 요약 리포트를 뽑아주는 식이다. AI가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은 데이터가 있는 곳이고, 기업 데이터는 스노우플레이크에 있다.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조합이다.
스노우플레이크 고객들의 AWS 지출은 2025년 한 해에만 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두 배 뛰었다. 이 가속도가 60억 달러 계약의 근거다.
그런데 이 계약에서 주목할 부분은 금액보다 조건이다. 스노우플레이크는 AWS의 자체 ARM 기반 CPU 칩인 그라비톤(Graviton)에 대한 접근권을 명시적으로 확보했다.
GPU가 전부가 아니다
AI 하면 GPU, GPU 하면 엔비디아. 이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AI의 진화 단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초기에는 거대 모델을 학습(Training)시키는 데 GPU가 집중적으로 필요했다. 지금은 학습된 모델을 매일 수억 명이 사용하는 추론(Inference) 단계다. 그리고 다음은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자동화(Automation) 단계다. 추론과 자동화 단계에서는 GPU보다 CPU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에이전트가 데이터를 읽고, 판단하고, 다른 시스템을 호출하는 수많은 '일반 연산'이 CPU 몫이기 때문이다.
AWS는 지난달 메타와도 수백만 개의 그라비톤 칩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메타는 불과 몇 달 전 구글 클라우드와 100억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던 곳이다. 그 메타가 AWS 그라비톤을 선택했다는 건 단순한 분산 투자가 아닐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1월 자체 AI 칩 Maia를 출시했다. 구글은 이미 수년째 TPU를 운영 중이다. 클라우드 빅3 모두 자체 칩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엔비디아는 무너지는가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지난주 또 한 번의 분기 실적 신기록을 발표하며 반격을 예고했다. 자사가 새로 출시한 AI 특화 CPU Vera는 2000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라고 선언했다. 이미 200억 달러어치를 팔았다고 했다.
엔비디아의 강점은 단순히 칩 성능이 아니다. AI 모델 개발자들이 엔비디아 칩 구조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해왔다는 점이다. 이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클라우드 업체들의 자체 칩이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더라도, 소프트웨어 호환성이라는 벽은 여전히 높다.
아마존 CEO 앤디 재시는 그라비톤이 엔비디아 대비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고 공언했지만, AWS는 여전히 엔비디아 칩도 병행 운영 중이다. 경쟁과 공존이 동시에 진행되는 구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지형 변화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 의존도가 높은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가 절대적이지만, 클라우드 업체들이 자체 칩 생태계를 키울수록 메모리 수요의 다변화도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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