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지 않아도 괜찮아: LAT 커플의 선택
23년을 함께했지만 한 번도 같은 집에 살지 않은 커플이 있다. '따로 살며 함께하는' LAT 관계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이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23년을 함께한 커플이 있다. 싸우지 않았고, 이별하지도 않았다. 단지 한 번도 같은 집에 산 적이 없을 뿐이다.
Mike와 Susan의 이야기다. 이들은 앞으로도 함께 살 계획이 없다.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이름이 있다. LAT(Living Apart Together), 즉 '따로 살며 함께하는 관계'다.
사랑의 공식을 다시 쓰는 사람들
우리는 관계의 진지함을 동거로 측정해왔다.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함께 살고. 이 순서를 따르지 않으면 관계가 덜 진지하거나,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9년 사이, 별거 중인 기혼 커플의 수는 25% 이상 증가했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 캐나다, 유럽 전역에서 비슷한 흐름이 관측되고 있다.
특히 이 트렌드는 50~60대 은퇴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이미 한 번의 결혼과 이혼, 혹은 사별을 경험한 이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굳이 같은 지붕 아래 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Vicki Larson의 저서 《LATitude》는 이 선택이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임을 보여준다.
왜 지금인가
동거를 관계의 기준으로 삼아온 사회에서 LAT가 가시화되는 데는 몇 가지 구조적 배경이 있다.
첫째, 수명 연장이다. 60세에 새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은 이전 세대에게는 낯선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60대는 이후 20~30년을 더 살아갈 세대다.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달라졌다.
둘째, 경제적 독립이다. 특히 여성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거를 합치는 경제적 필요가 줄었다. 합가가 현실적 선택이 아니라 감정적 선택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부동산과 자산 문제다. 한국적 맥락에서 특히 중요하다. 재혼이나 새 관계에서 각자의 부동산과 자산, 자녀 상속 문제를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단순하다는 판단도 LAT를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LAT는 가능한가
한국에서 이 개념은 아직 낯설다. 특히 '같이 살지 않으면 진지한 관계가 아니다'라는 인식, 그리고 '나이 들면 당연히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가족 중심의 문화 코드가 강하다. 명절마다 '언제 결혼하냐'는 질문이 '왜 같이 안 사냐'로 바뀌는 사회에서, LAT는 설명이 필요한 선택이다.
하지만 신호는 있다. 1인 가구 비율은 2024년 기준 전체 가구의 약 35%에 달한다. 황혼 이혼율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재혼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재혼 후 갈등의 상당 부분은 자녀 문제와 생활 방식 충돌에서 비롯된다. LAT는 이 갈등을 구조적으로 줄이는 방식일 수 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함께 살지 않는 관계는 위기 상황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아프거나, 경제적 위기가 닥쳤을 때, '각자의 집'은 '각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적 보호도 약하다. 동거 커플조차 법적 권리가 제한적인 한국에서, LAT 커플은 더욱 사각지대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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