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이 편지를 써도 아무도 읽지 않는 이유
이란 대통령 페제시키안이 미국 국민에게 공개서한을 보냈지만, 세계의 시선은 최고지도자에게만 쏠려 있다. 이란 정치 구조의 변화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쓴다. 상대국 국민을 향해 직접 호소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2026년 4월 1일,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란을 위협 세력으로 묘사하는 정보를 "넘어서 바라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쟁 중인 나라의 대통령이 상대국 국민에게 직접 손을 내민 것은 이례적인 외교적 제스처였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소셜 미디어에 "이란의 새 정권 대통령이 휴전을 요청했다"고 올렸다가, 이란 측이 이를 즉각 부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서방 언론은 페제시키안의 서한보다 그의 아들 유세프의 발언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국제 사회의 시선은 처음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세계가 주목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이후 국제 사회의 관심은 줄곧 이란의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되었다. 처음에는 알리 하메네이가 초기 공습으로 사망한 뒤 누가 그 자리를 승계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이후에는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이목이 쏠렸다.
이란 현대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현상이 단순한 관심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세계가 이란 대통령을 무시하고 최고지도자만 바라보는 것은, 이란의 정치 구조가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국제 사회의 시선은 이란 권력의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1979년 혁명이 약속했던 것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1979년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혁명 세력은 이슬람주의자, 좌파, 세속적 민족주의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들이 공유한 단 하나의 원칙은 군주제 거부였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혁명의 근간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체제는 순수한 신정정치도, 일반적인 공화국도 아닌 독특한 혼합체였다. 최고지도자가 종교적·정치적 최고 권위를 행사하되, 선출된 대통령이 공화국의 민주적 차원을 구현하는 구조였다.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정치 권력을 갱신한다는 약속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셈이었다.
혁명 초기 10년은 이 균형이 불안정하나마 작동했다. 초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권위는 대통령직과 공존했다. 1980년 선출된 초대 대통령 아볼하산 바니사드르는 혁명의 방향과 이란-이라크 전쟁 수행 방식을 두고 성직자 세력과 충돌했고, 1981년 의회에 의해 탄핵된 뒤 망명길에 올랐다. 대통령직이 최고지도자의 권위에 종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였다.
대통령직이 껍데기가 되어가는 과정
결정적 전환점은 2009년이었다. 강경파 대통령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의 재선 과정에서 대규모 부정 의혹이 터져 나왔고, 이에 항의하는 대중 시위가 "녹색 운동"으로 번졌다. 정권은 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이후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영향력이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아흐마디네자드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독자적인 정치 기반을 구축하려 했고, 2011년 정보부 장관 헤이다르 모슬레히를 해임하려다 하메네이에게 제지당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이 독립적인 의사결정 주체가 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아흐마디네자드는 결국 2017년 대선에서 최고지도자가 임명하는 헌법수호위원회에 의해 출마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 시절(2013~2021) 잠시 예외처럼 보이는 시기가 있었다. 그의 주도로 체결된 핵 합의(JCPOA)는 국내외에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합의의 지속 여부는 대통령의 권한 밖에 있었고, 트럼프 1기 행정부의 탈퇴와 함께 합의가 무너지자 이란 강경파들은 "개혁과 외교는 실수였다"는 확신을 굳혔다.
정치적 소외감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2024년 대선 투표율은 39.9%에 불과했다. 이란 국민의 60% 이상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
페제시키안이 미국 국민에게 서한을 보낼 때, 그 행위가 갖는 외교적 의미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의 직책이 지금도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이란 내부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이란 대통령이 실질적 권한 없는 상징적 직위에 불과하다면, 그와의 협상이나 대화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반대로, 전쟁과 내부 혼란 속에서 권력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은 없는가?
2026년 1월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 전시 상황이 부과한 제약, 선출 기관의 지속적인 주변화는 모두 대통령직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가 이란의 정치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재편할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국제 사회가 이란 대통령을 무시하고 최고지도자에게만 집중할 때, 우리는 이란의 권위주의적 집중화를 무의식적으로 정상화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1979년 혁명이 거부하려 했던 바로 그 구조, 즉 단 하나의 직위가 한 나라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가 다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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