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말하는 동안, 돈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아티야 와리스의 주장—인권 담론이 아무리 풍성해도 글로벌 금융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불평등은 고착된다. 조세 회피, 부채 함정, 그리고 침묵하는 국제 금융 시스템의 실체를 짚는다.
매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수천 개의 결의문이 채택된다. 매년 수백 개의 NGO가 보고서를 발간하고, 각국 정상은 연설에서 '인간의 존엄'을 언급한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저소득 국가들은 받는 원조보다 더 많은 돈을 부채 이자로 갚아나간다. 말과 돈이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유엔 독립전문가 출신 법학자 아티야 와리스(Attiya Waris)는 철학 저널 Aeon에 기고한 글에서 이 모순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의 핵심 테제는 단순하지만 불편하다. 인권에 대해 아무리 많이 이야기해도, 글로벌 금융의 구조가 개혁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구조가 담론을 이긴다
와리스가 지적하는 문제는 개별 국가의 부패나 정책 실패가 아니다. 그는 시스템 자체를 문제 삼는다. 현재의 국제 금융 질서—조세 조약 네트워크, 역외 금융 센터, 국가 간 부채 협상 구조—는 대부분 20세기 중반 식민지 해방 이전에 설계된 틀 위에 서 있다. 이 틀은 자본이 저세율 관할권으로 이동하기 쉽게 만들고, 개발도상국이 자국 세수를 확보하기 어렵게 만든다.
숫자는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글로벌 금융 투명성 연구기관 Tax Justice Network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약 4,800억 달러의 세금이 다국적 기업과 초부유층의 조세 회피로 사라진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아프리카, 남아시아, 중남미 등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서 유출된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저소득 국가들이 2023년 한 해에만 외채 이자로 지불한 금액은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으며, 일부 국가는 보건·교육 예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채권자에게 보냈다.
와리스는 이를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로 프레이밍한다. 학교를 지을 세수가 없다면 교육권은 공허한 선언이다. 병원을 운영할 예산이 부채 상환에 잠식된다면 건강권은 종이 위의 문자에 불과하다. 금융 구조와 인권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규정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왜 지금, 이 주장인가
이 논의가 2025~2026년에 특히 울림을 갖는 이유가 있다. 유엔은 2025년을 '개발 금융을 위한 행동의 해'로 지정하고, 스페인 세비야에서 제4차 개발 금융 국제회의(FfD4)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 부채 재조정 메커니즘 개혁, 다자개발은행 역할 확대 등이 논의됐다. 그러나 회의 결과물은 구속력 없는 선언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시에 미국의 국제 원조 축소와 다자주의 후퇴는 개발도상국들이 국제 금융 시장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시장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와리스가 지적하는 구조적 취약성은 더 깊어진다. 인권 담론이 활발해지는 바로 그 시점에, 그 담론을 뒷받침할 물질적 조건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역설이다.
반론: 구조만의 문제인가
물론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시각도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빈곤이 외부 금융 구조보다 국내 거버넌스 실패—부패, 법치 부재, 재산권 불안정—에 더 크게 기인한다고 본다. 구조 개혁 없이 국내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IMF나 세계은행 같은 기관들은 최근 수십 년간 개혁을 거듭해왔으며, 단순히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조세 회피 문제에 대해서도 OECD의 BEPS(세원 잠식 및 이익 이전 방지) 프레임워크가 일정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와리스의 주장이 날카로운 이유는 이런 개혁들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설계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OECD의 글로벌 최저 법인세 합의조차 협상 테이블에서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는 제한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세수 혜택의 대부분은 선진국에 귀속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위치
한국은 이 논의에서 흥미로운 위치에 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서, 한국은 글로벌 금융 구조의 수혜자이자 비판자 양쪽에 설 수 있는 드문 나라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한 개발 협력과 동시에, 한국 대기업들의 조세 전략이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는 현실은 이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글로벌 금융 구조 개혁 논의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단순한 외교 문제를 넘어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본 콘텐츠는 AI가 원문 기사를 기반으로 요약 및 분석한 것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원문 확인을 권장합니다.
관련 기사
미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난민 1,100명이 콩고 또는 탈레반 치하 귀환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난민 정책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홀로코스트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이야기. 트레블링카 절멸 수용소의 여성 수감자들이 봉기를 무장시켰다는 사실이 80년 만에 밝혀졌다. 침묵은 왜 이토록 오래 지속됐는가.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자 강제구금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항소법원 일정을 전략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360명의 판사가 위법 판결을 내렸지만, 단 27명의 판사가 있는 법원이 판세를 바꾸고 있다.
이란 전쟁 3주, 테헤란 시민들은 폭격도 두렵지만 전쟁 종식 후 더 잔인해질 정권을 더 두려워한다. 90만 명의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의견
이 기사에 대한 생각을 나눠주세요
로그인하고 의견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