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블록체인 전쟁, 한국 금융에도 불똥 튀나
유럽 12개 은행이 달러 스테이블코인 패권에 맞서 유로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Qivalis를 출범시켰다. 온체인 금융의 달러화 현상이 가속되는 지금, 한국 금융과 투자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되는 돈의 99.8%가 달러다. 유로의 비중은 0.2%. 전통 금융에서 유로가 전 세계 거래의 20~25%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디지털 금융 세계에서 유럽은 사실상 없는 존재나 다름없다.
이 숫자 하나가 유럽 금융권을 움직였다.
12개 은행이 뭉친 이유
ING, 유니크레딧, BBVA 등 유럽 주요 은행 12곳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유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Qivalis를 추진 중이다. MiCA(유럽 암호자산 규제법) 준수를 전제로 네덜란드 중앙은행의 라이선스 승인을 기다리며, 올해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Qivalis의 CEO 얀-올리버 젤은 CoinDesk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온체인에서 유로가 없으면 유일한 대안은 달러다. 그건 유럽의 금융 주권과 디지털 주권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현재 시가총액 3,140억 달러(약 430조 원) 규모다. 제프리스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향후 5년 안에 8,000억~1조 1,500억 달러까지 성장할 수 있다. 이 시장의 대부분을 테더(USDT)와 서클(USDC)이 장악하고 있다. 두 토큰 모두 달러 기반이다.
젤 CEO는 기존 유로 스테이블코인 시도들이 실패한 이유도 짚었다. "몇몇 은행이 각자 코인을 발행하면 시장이 더 파편화될 뿐이다. 기관들이 뭉쳐야 유동성과 배포망이 생긴다." Qivalis가 단순한 토큰이 아닌 '유로와 블록체인 사이의 인프라'를 자처하는 이유다.
ECB 디지털 유로와 다른 길
유럽중앙은행(ECB)도 디지털 유로를 개발 중이지만, 빨라야 2029년 출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최근 중앙은행의 기술적 준비는 완료됐으며 이제 정치적 결정만 남았다고 밝혔다.
Qivalis는 이와 다른 층위에 있다. ECB 디지털 유로가 중앙화 인프라 기반의 공공 결제 수단이라면, Qivalis는 민간이 발행하는 MiCA 규제 스테이블코인으로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한다. 젤 CEO는 이를 경쟁이 아닌 "동일한 금융 스택의 보완재"로 규정한다.
그가 설명하는 '통화 스택'은 이렇다. 중앙은행 돈은 중앙화 시스템에 머물고, 국경 간 결제나 온체인 정산 같은 블록체인 기반 사용 사례에는 퍼블릭 네트워크 위의 유로 자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투자자에게 무슨 의미인가
이 이야기가 유럽만의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온체인 금융의 달러화 현상은 한국 시장에도 직결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투자자 대부분은 USDT나 USDC를 쓴다. 달러 기반이다. 환율이 출렁이면 수익률이 그대로 흔들린다. 젤 CEO가 언급한 'FX 리스크'는 원화 사용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달러로 수익을 얻는 유럽 이용자는 환율 리스크에도 노출된다"는 그의 말은 원-달러 환율 변동에 민감한 한국 투자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더 큰 그림을 보면, Qivalis의 성공 여부는 한국 금융 당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정책을 어떻게 설계할지에도 시사점을 준다. 유럽이 MiCA라는 규제 프레임워크 아래 민간 은행 컨소시엄을 통해 유로 스테이블코인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현재 한국에서 논의 중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향과 비교할 수 있는 실험 사례가 된다.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빅테크, 혹은 시중은행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컨소시엄 형태로 발행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한편 Qivalis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한다면, 달러 스테이블코인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의 온체인 금융 생태계에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은 한국 투자자들에게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기회일 수도, 또 다른 환율 리스크의 변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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