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 무기화 카드를 꺼내들다
유럽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경제적 압박 수단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인가, 위기인가?
조용한 강자의 반격
유럽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유지해온 유럽연합이 이제는 자신만의 '경제 무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반도체 소재부터 희토류 가공까지, 유럽이 쥐고 있는 핵심 기술들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신호다.
최근 유럽위원회가 발표한 '경제 안보 전략'은 단순한 정책 문서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재정의하려는 야심찬 계획이다. 특히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독일의 화학 소재, 네덜란드의 농업 기술 등 유럽만이 가진 독점 기술들이 새로운 지정학적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딜레마
이 변화는 한국 기업들에게 복잡한 계산을 요구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SML 장비 없이는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유럽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이 장비 수출을 제한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 진출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기회도 있다. 유럽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면, 한국은 대체 파트너로서 매력적이다. 현대차의 유럽 전기차 공장,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기술, 포스코의 친환경 철강 기술 모두 유럽의 새로운 전략에 부합한다.
실제로 한-EU 간 교역액은 작년 1,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한-중 교역액의 절반 수준이지만, 증가 속도는 더 빠르다. 유럽의 '경제 무기화'가 이 흐름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게임의 룰
유럽의 전략은 미국의 직접적 압박과는 다르다. '조용하지만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독일 바스프가 중국 공장 증설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을 때, 표면적으로는 '시장 상황'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럽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방식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고민을 안겨준다. 명시적 제재가 아니라 '자율적 판단'을 유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더 어렵다. 정부 차원에서 공식 항의하기도 애매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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