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오르는데 채용은 멈췄다, 미국 '고용 없는 호황'의 역설
미국 경제가 4% 성장하며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채용은 사실상 중단됐다. AI 투자와 정책 불확실성이 만든 새로운 경제 현상을 분석한다.
4% 성장률에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 하지만 채용은 20년 만에 최악 수준이다. 미국 경제에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이중성이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에는 축제 분위기지만, 메인스트리트는 불안하다.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일자리는 늘지 않는 '고용 없는 호황(Jobless Boom)'이 현실이 됐다. 지난해 미국의 일자리 증가는 경기침체가 아닌 상황에서 2003년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숫자로 보는 채용 절벽
미국이 2025년 일자리를 잃지 않은 건 오직 의료·사회보장 분야 덕분이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대부분 산업에서 일자리가 줄었다. 전체 일자리 증가의 85%가 4월까지 집중됐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적인 관세를 발표한 이후 채용은 사실상 중단됐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더 극명하다. 2015-2019년 월평균 일자리 증가는 19만개였다. 2022년 하반기에는 33만1천개로 폭증했고, 2023년에도 21만6천개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4년에는 16만8천개로 급감했고, 2025년에는 고작 4만9천개에 그쳤다.
실업률은 9월부터 4.4% 수준에서 정체 상태다. 해고가 늘어나지도 않았지만, 채용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다.
세 가지 원인이 만든 완벽한 폭풍
1. 팬데믹 이후 과채용의 후유증
2021-2023년 기업들은 인재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직원들이 역사적 수준으로 이직하며 임금 입찰전이 벌어졌다. 이제 기업들은 '적정 규모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
미국은 2022년 6월 팬데믹으로 잃었던 모든 일자리를 회복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과도한 채용이 계속됐다. 현재의 채용 부진은 그 시기의 반작용이라는 분석이다.
2. 트럼프 정책의 충격파
2025년 정책 변화는 극적이었다. 트럼프는 193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의 관세를 부과했고, 이민을 대폭 제한했다. 대규모 추방 프로그램까지 더해져 50년 만에 처음으로 순이민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DOGE(정부효율성부) 등의 노력으로 연방정부 인력도 27만7천명 감소했다. 관세 타격이 큰 제조업은 4월 이후 7만2천개 일자리를 잃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노동력 풀이 크게 줄어 실업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월 3만개 신규 일자리만 있으면 된다고 추산한다.
3. AI 투자의 기회비용
AI가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대체했다는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 스탠포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 연구진 모두 현재까지는 거의 영향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기업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기업들이 2025년AI와 로봇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는 것은 인력 채용에 쓸 돈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에서 근로자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5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들이 자본 투자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
미국의 '고용 없는 호황'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신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대기업들도 AI 반도체와 관련 인프라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전기차 전환으로, 네이버와 카카오는 AI 서비스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처럼 자본 투자가 인력 투자를 밀어낼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고려하면, 대졸 신입사원 채용 감소는 사회적 파장이 클 수 있다. 미국에서도 AI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계층이 대학 졸업생들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2026년 전망: 지속될 역설
2026년에도 이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부유층 소비는 여전히 강하고, AI 구축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낮은 금리, 규제 완화, 세금 감면까지 더해져 성장 동력은 충분하다.
낙관적 시나리오는 기업들이 '적정 규모 조정'을 마치고 다시 채용을 시작하는 것이다. 임금 상승률이 3.8%로 인플레이션(2.7%)을 웃돌고 있어, 노동시장이 다시 활성화되면 더 많은 미국인이 경제적 혜택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문제로 유럽에 관세를 위협하자 주식과 채권 시장이 요동쳤다. 많은 CEO들이 비용 절감과 인력 감축으로 주주들에게 보상받고 있어, 채용 확대에 나설 동기가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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