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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만의 유해 발굴, 대만 다이버의 죽음이 던진 질문
정치AI 분석

84년 만의 유해 발굴, 대만 다이버의 죽음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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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유해 발굴 중 대만 다이버가 사망하며 한일 역사화해 노력에 새로운 과제가 제기됐다.

84년 전 바닷속에 잠긴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해를 찾던 대만 다이버가 목숨을 잃었다. 2월 7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고는 단순한 안전사고를 넘어 한일 양국이 마주한 역사 화해의 복잡함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바다 밑 84년의 침묵

1942년 2월 3일,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탄광에서 터널 천장이 무너지며 18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136명은 일제의 전시 동원 정책으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었다. 해저 탄광이었던 이곳은 사고와 함께 바닷물에 완전히 잠겼고, 희생자들의 유해는 84년째 차가운 바다 밑에 남겨져 있다.

조세이탄광수몰사고를역사에새기는모임(刻む会, 기자무카이)은 1991년부터 이 잊힌 참사를 알리고 유해 발굴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안전상 우려"를 이유로 적극적인 발굴 작업을 피해왔다. 결국 시민단체가 나섰다. 2024년부터 전 세계 전문 다이버들과 함께 독자적인 유해 수습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이틀

2월 5일, 대만·태국·핀란드 등에서 온 7명의 숙련된 다이버들이 우베시에 모였다. 2월 6일에는 첫 성과가 나왔다. 팀이 해저에서 두개골 하나를 발견해 인양한 것이다. 한국에서 온 유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80년 넘게 기다린 끝에 가족의 흔적을 찾았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바다 밑에 남은 수많은 이들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하지만 다음 날인 2월 7일, 희망은 비극으로 바뀌었다. 57세 대만인 다이버 웨이 쉬가 오전 10시 30분경 해저 환기구를 통해 잠수 작업을 하던 중 경련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었다. 동료 다이버들이 즉시 구조했지만 결국 숨졌다. 산소 독성으로 인한 발작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온도차, 시민의 의지

사고 당일 탄광 인근에서는 추도식이 열렸다. 한국 행정안전부 관계자가 참석해 "유해를 보다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 달 전인 1월 13일 나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은 조세이탄광 유해의 DNA 검사 협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일본 측 조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고베대학교의 미쿠리야 기무라 교수는 "유족들이 현재 배상이 아닌 DNA 검사와 유해 송환을 요구하고 있어 일본 정부가 협력하기 쉬워졌다"며 "조세이탄광 협력이 한일관계 개선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역사의 무게와 현실의 벽

조세이탄광 사고는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 문제와 함께 한일 간 미해결 역사 현안 중 하나다. 하지만 다른 사안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정치적 부담이 적다. 생존자나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거의 없고, 배상 문제보다는 인도적 차원의 유해 송환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전은 더디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안전을 이유로 적극적인 발굴에 나서지 않고 있고, 이번 사고로 안전 우려는 더욱 커졌다. 시민단체 기자무카이이노우에 요코 대표는 "희생자들에게는 국경이 없다"며 "가능한 한 빨리 유해를 수습해 가족과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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