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빼앗긴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 못한다
성인의 감정 능력과 실용적 기술은 적절한 수준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통해서만 습득된다. 과잉보호 세대가 직면한 성장의 역설을 분석한다.
아이가 넘어지기 직전, 손을 뻗는 것이 좋은 부모의 본능이다. 그런데 그 손이 너무 빠를 때, 아이는 무엇을 잃는가?
철학자 니클라스 세르닝과 작가 니나 리옹이 공동 기고한 에세이는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 불편한 결론에 도달한다. 성인이 갖춰야 할 감정적 역량과 실용적 기술들—좌절을 견디는 힘,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는 용기—은 오직 적절한 수준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통해서만 습득된다는 것이다. 보호가 너무 완벽할 때, 성장은 멈춘다.
왜 지금 이 이야기인가
이 논의가 새롭지는 않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2018년 《나쁜 교육》에서, 법학자 그레그 루키아노프와 함께 '안전주의(safetyism)'가 대학 캠퍼스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분석했다. 그러나 2026년의 맥락은 다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전례 없는 '불편함의 공백'을 만들어냈다. 학교 대신 화면, 운동장 대신 방, 친구 대신 알고리즘이 채운 2-3년의 시간. 그 세대가 지금 대학 강의실과 첫 직장에 진입하고 있다. 동시에 스마트폰과 AI 도구는 사소한 불편함조차 즉각 해소해주는 환경을 만들었다. 길을 잃을 필요도, 지루함을 견딜 필요도, 어색한 침묵을 버틸 필요도 없어진 세상이다.
세르닝과 리옹의 주장은 이 맥락에서 읽힐 때 날이 선다. 불편함은 제거해야 할 버그가 아니라, 인간 발달의 핵심 피처라는 것.
'적절한 불편함'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논의는 복잡해진다. 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무차별적 고통이 아니라 '적절한(appropriate)' 수준의 스트레스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최적 좌절(optimal frustration)'이라 부른다.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어려움—약간 손에 닿지 않는 장난감, 친구와의 작은 다툼, 시험 전날의 긴장감—이 바로 그 재료다.
문제는 이 '적절한'의 경계가 문화마다, 가정마다, 심지어 아이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를 예로 들면, 학업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장을 위한 불편함'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입시라는 단일 목표를 향한 극도의 압박은 오히려 자율적 판단 능력을 억제하고, 실패를 견디는 경험을 박탈할 수 있다. 스트레스의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OECD의 2023년 학생 웰빙 보고서는 한국 학생들이 학업 성취도는 높지만 '실패 대처 능력'과 '자기효능감' 지표에서는 OECD 평균을 밑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많이 공부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역설이다.
세 개의 시각
이 논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하나가 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불편함을 허용하라'는 조언은 종종 공허하게 들린다. 경쟁이 실재하는 사회에서, 내 아이만 일부러 불편하게 두는 것은 불안을 감수하는 일이다. 특히 한국처럼 교육이 계층 이동의 거의 유일한 통로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과잉보호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구조적 압력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기도 하다.
교육자의 시각은 다르다. 현장 교사들은 갈수록 학생들이 사소한 갈등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교사나 부모에게 중재를 요청한다고 말한다.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질수록, 아이들이 마찰을 경험할 기회는 줄어든다.
심리학자들은 가장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트라우마와 적절한 스트레스의 경계는 이론보다 실제에서 훨씬 흐릿하다.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불편함도 성장의 자원'이라는 논리가 구조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오용될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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