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완성된 '순교자'와 '압제자' - 하메네이의 두 얼굴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죽음을 둘러싼 상반된 반응. 순교자 숭배 문화와 권위주의 억압 사이에서 갈린 이란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2월 28일,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란 정부는 즉시 시아파 전통에 따라 40일간의 공식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하지만 거리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떤 이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어떤 이들은 축제를 벌였다.
하메네이의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하나는 '순교자'로, 다른 하나는 '압제자'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 극명한 대비는 단순히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현대 이란 사회가 품고 있는 깊은 균열을 보여준다.
1400년 전 전투가 만든 '순교' 문화
시아파에서 순교가 신성시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680년 카르발라 전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후세인이 우마이야 칼리프 야지드에 맞서 싸우다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후세인은 야지드를 부정한 통치자로 여겨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 10일간의 전투 끝에 후세인과 그의 추종자들은 대부분 전사했다. 이때부터 후세인의 추종자들은 '시아파'라 불리며, 순교를 신성한 희생으로 여기게 됐다.
매년 이슬람력 1월 10일 아슈라 기간이면, 전 세계 시아파 무슬림들이 후세인의 죽음을 재현하고 자해 의식을 치른다. 이란 인구의 90-95%가 시아파인 만큼, 이 순교 문화는 이란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다.
정치적 도구가 된 '순교자' 수사학
루홀라 호메이니가 1979년 이슬람 공화국을 세운 이후, 순교는 정치적 수사의 핵심이 됐다. 특히 1980년대 8년간 지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 논리는 절정에 달했다.
전쟁에서 이란은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호메이니는 유엔 중재로 휴전협정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독배를 마시는 것"이라 표현했다.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지 못한 채 타협해야 했던 굴욕감을 드러낸 것이다.
전쟁 이후 이란 곳곳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을 딴 거리 표지판, 벽화, 포스터가 넘쳐났다. 순교자 및 참전용사 재단은 전사자 가족을 지원하면서도 하메네이의 통제 하에 막대한 수익사업을 벌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굽히지 않은 '원칙'
하메네이가 죽기 직전 보인 행보는 그를 '순교자'로 기억하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근거가 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만과 제네바에서 3차례 협상을 제안했지만, 하메네이는 핵 프로그램뿐 아니라 미사일 개발과 지역 대리세력 지원 중단 요구를 거부했다.
특히 미사일과 대리세력 문제는 테헤란의 '레드라인'으로 여겨졌다. 트럼프가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중동에 집결시켰음에도, 하메네이는 협상가들에게 이 부분만큼은 양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대리세력에 대한 지원도 계속했다. 2024년부터 이스라엘과 미국의 개입이 본격화되면서 이란 본토까지 공습을 받았지만, 그는 기존 노선을 고수했다.
37년간 쌓아올린 권력과 억압
하지만 하메네이를 '압제자'로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37년간 최고지도자로 군림하며 그가 보인 것은 무자비한 권위주의였다.
2026년 1월 시위에서 그는 보안군에 시위대 수천 명을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2017-18년, 2019-20년, 2022-23년 시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망한 시위자들의 가족은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했고, 시신을 돌려받으려면 총알값까지 내야 했다.
정치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하메네이는 표면적 양보만 할 뿐, 근본적 변화는 거부했다. 개혁을 추진하려던 정치인들은 가택연금이나 감옥에 갇혔다.
최고지도자로서 그는 군 통수권, 사법부 수장 임명권, 언론 감독권을 독점했다. 선거 후보자를 심사하고 국회 법안을 거부할 수 있는 기구도 통제했다. 겉으로는 검소해 보였지만, 그가 직접 관리하는 준국가기관 세타드의 자산은 2013년 기준 950억 달러로 추정됐다.
죽음 이후에도 갈린 기억
하메네이의 죽음과 함께 그의 딸, 사위, 손자, 며느리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가족까지 함께 죽음을 맞은 것은 그를 순교자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더욱 신성한 의미로 다가온다.
테헤란 거리에서는 여전히 그의 초상화를 든 추모 집회가 열린다. 이들에게 하메네이는 더 강한 적 앞에서도 원칙을 굽히지 않고 목숨을 바친 순교자다.
반면 거리에서 축제를 벌이는 이들에게 그는 개인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국민을 억압한 독재자일 뿐이다. 이스탄불의 이스라엘 영사관 앞에서 벌어진 추모 시위와, 니코시아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는 이란 사회의 이런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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