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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의 저항이 보여준 '도덕적 자명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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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의 저항이 보여준 '도덕적 자명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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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단속에 맞선 미국인들의 행동이 던지는 질문. 정치적 정체성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3,000명의 연방 요원이 미네소타주에서 철수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담당자 톰 호먼은 지난주 "임무 완료"라며 발표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예상치 못한 당황감이 묻어났다. "더 이상의 유혈사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작전 종료 선언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저항의 목소리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일은 트럼프 행정부도 예상하지 못했다.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두 명의 시민 관찰자 르네 굿알렉스 프레티가 연방 요원들에 의해 사망하자, 지역 주민들이 나섰다. 이들을 "국내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려던 행정부의 시도는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이건 비인도적이다." "동료 인간들과 함께 항의하고 싶다." 여론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미국인 3분의 2가 이제 ICE(이민세관단속청)의 행동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사람들이 보인 이런 반응은 무엇을 의미할까?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2026년 미국에서도 여전히 '도덕적으로 자명한 것'에 대한 감각이 남아있다는 증거일까?

자명한 진리의 재발견

뉴스쿨 대학의 철학자 옴리 뵘은 최근 저서 《급진적 보편주의》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자명한 진리"라는 표현이 2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선언조차 논쟁거리가 되는 시대에, 자명한 진리를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심지어 슈퍼볼 하프타임 쇼마저 미국 정체성을 둘러싼 싸움의 소재가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뵘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에 대한 직관적 이해, 어떤 인종이나 국가에 속하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진리 말이다. 노예제를 용납할 수 없었던 폐지론자들, 링컨이 게티스버그에서 외친 이상, 마틴 루터 킹100년 후에도 주장했던 그 진리들이다.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

뵘의 "급진적 보편주의"는 현재 미국을 지배하는 정체성 정치와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우파의 "전통적 가치" 투쟁이든, 좌파의 "젠더와 인종" 중심 운동이든, 모두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서구 자유주의 전통마저 "거짓된 보편주의"라고 비판한다. 계몽주의 이후 도덕적 명확성은 "합의, 이익, 의견"의 문화로 대체되었고, 우리는 이제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상하며 얇은 다수결의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종종 불의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는 결국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그들이 '우리'의 범위를 얼마나 넓게 그리느냐에 달려있다. "We the People"이라는 표현 자체가 제한적이었고, 흑인과 여성, 많은 이민자 집단들이 오랫동안 그 범위 밖에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절대적 존엄성의 정치학

뵘이 제시하는 대안의 핵심은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 나온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가격이 있거나 존엄성이 있다. 인간은 도덕적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존엄성을 갖는다. 따라서 절대 가격을 매길 수 없고,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이 될 수 없다.

이런 "절대적 존엄성"에 기반한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뵘이 든 예시는 1960년대 중반 킹 목사의 베트남 전쟁 반대 결정이다. 당시 전쟁은 인기가 있었고, 민권운동은 린든 존슨 행정부와 함께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NAACP조차 킹의 반전 선언을 "심각한 전술적 실수"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킹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의무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당신 민족의 대의를 해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깊이 슬퍼집니다. 그들이 진정 나를, 나의 헌신을, 나의 소명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급진적 보편주의의 문제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종종 자신의 즉각적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요구하고, 때로는 법을 어기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 "절대적 의무를 따르는 것은 복종이 아니라 불복종의 근원"이라고 뵘은 쓴다.

이민 문제를 예로 들면,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동등하게 고려한다면 국경 개방이 답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일자리를 잃거나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의 존엄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뵘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해 제시한 "양민족 유토피아"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이 두 집단이 같은 정치체 안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반복해서 보여왔다.

일상 속 도덕적 직감

그렇다면 이런 예언자적 시각은 소수의 성인에게만 가능한 것일까? 미네소타의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들은 낯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자신들의 권리나 자유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의무감에서 행동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보편주의적 충동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 우리 내면에서 울리는 경보음 같은 것 말이다. 사람을 물건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직감, 어린이의 순수함은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믿음, 개인적 경험은 중요하지만 공통의 인간성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감각.

이런 진리들은 혁명적 변화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방식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합리적인 의료 시스템을 만들고, 학교에서 휴대폰을 없애고, 난민을 쓰레기 취급하지 않는 이민 정책을 만드는 일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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