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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미국을 떠나는 미국인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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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미국을 떠나는 미국인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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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남편을 둔 미국 시민 가족이 자발적으로 멕시코로 이주하는 이야기. 트럼프 재집권이 만든 새로운 현실을 들여다본다.

630만 명. 미국에서 서류미비 부모를 둔 아이들의 숫자다. 이 중 상당수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가족을 지킬 것인가, 조국을 지킬 것인가.

레이첼 크루즈 가족의 이야기는 바로 이 딜레마의 현실판이다. 미국 시민인 교사 레이첸과 서류미비 이민자인 남편 이르비, 그리고 뉴욕에서 태어난 두 딸이 2025년 8월 멕시코로 '자발적 추방'을 택했다.

20년 기다림의 끝

이르비는 19세에 미국에 왔다. 9·11 테러 다음날에도 건설현장에 나가 일했던 청년이었다. 20년 동안 완벽한 시민이 되려 노력했다. 범죄기록도 없고, 세금도 성실히 냈다. 두 딸은 영재학교에 다녔고, 그는 맨해튼 고급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됐다.

하지만 법적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수차례 변호사를 만났지만 답은 늘 같았다. "기다리세요." 이민법 개정이 임박했다는 희망적 전망만 반복됐다.

2024년 여름, 바이든 행정부가 '가족 결속 유지(Keeping Families Together)'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르비 같은 사람들이 드디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레이첼은 580달러를 내고 서류를 제출했다. "이르비가 드디어 법적 보호를 받을 것 같다"고 기대에 부풀었다.

하루 만에 공화당 주도 16개 주가 소송을 냈고, 연방법원이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트럼프 재선 후 프로그램은 완전히 폐지됐다. 더 심각한 건 레이첼이 제출한 서류 때문에 정부가 이르비의 정확한 신원과 거주지를 파악하게 된 점이었다.

sanctuary city의 한계

뉴욕은 sanctuary city(이민자 보호도시)다. 친구들은 크루즈 가족이 과민반응한다고 생각했다. "이르비는 미국 시민과 결혼했잖아. 걱정할 필요 없어."

하지만 레이첼과 이르비는 친구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간 이민 시스템과 싸워온 당사자들의 직감은 달랐다. 트럼프의 '대규모 추방' 공약은 단순한 선거 구호가 아니었다.

2025년 1월 13일, 이르비는 장인 더그와 함께 멕시코로 향했다. 트럼프 취임 전에 미국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7개월 후 레이첼과 두 딸이 합류했다.

뿌리 뽑힌 아이들

13세 사라와 11세 아나에게 멕시코는 낯선 나라였다. 스페인어를 조금밖에 못했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가장 힘들었다. 사라는 "내가 여기 오기로 선택한 게 아니야!"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들이 다닌 오악사카의 사립학교는 이중언어 교육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스페인어 위주였다. 뉴욕에서 우등생이던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 같아"라고 토로했다.

레이첼은 연봉 1만700달러짜리 영어교사 자리를 구했다. 뉴욕에서 받던 12만 달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액수였다. 브롱크스의 파란 집을 팔아서 빚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고향이 된 타국, 타국이 된 고향

이르비는 매일 새벽 농장에 나가 토마토와 고추를 키웠다. 뉴욕의 지하철 소음 대신 새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뉴욕에서 배운 모든 게 여기서는 쓸모없어. 그 시간들이 다 헛된 것 같아."

역설적이게도 가족들은 멕시코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뉴욕에서 늘 따라다니던 체포 공포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르비는 우울해했다. 밤마다 뉴욕의 클럽 SNS를 들여다보며 과거에 매달렸다. 레이첼이 "관심 없어"라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추수감사절에 다른 미국인 가족 집에 초대받았을 때, 이르비는 스터핑 한 입 먹고 눈물을 터뜨렸다. 같은 달 그가 자주 가던 브롱크스의 멕시코인 모임 장소가 ICE(이민세관단속청) 급습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 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던 친구가 체포됐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서

2025년 크리스마스, 가족은 뉴욕을 방문했다. 사라는 오악사카 급우들에게 줄 딸기맛 팝타르트를 샀고, 멕시코 남자친구와 밤늦게 전화 통화를 했다. 아이들은 이제 뉴욕을 '집'이라고 부르며 기뻐했다.

하지만 레이첼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게 가장 힘든 거야. 우린 좋은 사람들이고, 내 아이들은 훌륭해. 뉴욕시가 우리 아이들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운이었을까."

브롱크스의 파란 집은 새 가족이 들어왔다가 몇 주 만에 떠났다. 지금은 비어있고, 정원은 엉망이 됐다. 낡은 소파가 밖에서 썩고 있다. 크루즈 가족이 쏟아부은 모든 것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숫자 뒤의 인간들

레이첼처럼 서류미비 배우자를 둔 미국 시민과 영주권자는 420만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가족이 '가족 vs 조국' 선택을 강요받고 있을까? 그리고 미국은 이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있을까?

레이첼의 아버지 더그는 가계도를 연구하는 취미가 있다. 그의 조상들은 아일랜드 기근, 독일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포그롬을 피해 미국으로 왔다. 심지어 메이플라워호 승객도 있었다.

"40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이 내 자녀들과 손자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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