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미국 외교관이 베이징을 떠나 베를린에서 말하는 것
20년 경력의 전직 미국 외교관 윌리엄 클라인이 미중 관계, 대만, 그리고 글로벌 외교의 미래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한국 외교·안보에도 직결되는 시각.
외교관은 은퇴 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재직 중에는 침묵이 직업이었던 사람이, 자리를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목소리를 낸다. 윌리엄 클라인의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20년 넘게 미국 외교관으로 일한 클라인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여러 고위직을 역임했다. 대만을 담당하는 미국재대만협회(AIT)에서도 근무했고, 워싱턴 국무부의 중국 데스크를 거쳤다. 남아시아, 중동, 구소련 지역까지 발을 뻗은 그의 경력은 미국 외교의 지형도 그 자체다. 지금 그는 베를린에 있다. 전략 자문·커뮤니케이션 기업 FGS Global의 베를린 사무소에서 일하며, 이제는 '조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분석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왜 지금, 이 목소리가 중요한가
타이밍이 예사롭지 않다.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관계는 관세 전쟁을 넘어 기술 패권, 군사 억지, 대만 해협 긴장이라는 복합 방정식으로 진화했다. 외교 채널은 좁아지고, 공개 발언은 전략적 신호가 된다. 이런 시기에 베이징 대사관 고위직 출신이 공개 석상에 나선다는 것은 단순한 회고담이 아니다.
클라인이 근무했던 2016~2021년은 미중 관계의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트럼프 1기의 무역 전쟁 시작, 코로나19 발원지 논란,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가 모두 이 시기에 폭발했다. 그는 그 폭풍의 한가운데서 외교 전선을 지켰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은, 그 경험에서 나온다.
대만 문제는 특히 민감하다. AIT는 미국과 대만 사이에 공식 외교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대사관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클라인이 이곳에서 쌓은 경험은 대만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는 지금, 단순한 이력서 항목이 아니다.
베를린에서 바라보는 세계
흥미로운 것은 그의 현재 위치다. 워싱턴도 서울도 도쿄도 아닌, 베를린. 유럽의 심장부에서 미중 관계를 조언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럽은 미중 경쟁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미국의 동맹이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적 연결을 쉽게 끊지 못하는 전략적 자율성의 딜레마 속에 있다. 특히 독일은 자동차, 화학, 기계 산업에서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다. 폭스바겐, BASF, 지멘스 같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베를린 정가의 핵심 관심사다. 클라인 같은 전직 외교관이 이 도시에 자리를 잡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시각을 유럽 기업과 정부에 '번역'해주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이 구도는 낯설지 않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는 모두 미중 사이에서 공급망과 시장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처지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가 강화될 때마다 한국 기업들은 워싱턴의 의도를 읽으려 애쓴다. 클라인 같은 인물이 민간 자문 시장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그 '해독' 수요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외교관이 컨설턴트가 될 때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했던 외교관이 민간 기업의 전략 자문으로 전환할 때, 그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클라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회전문(revolving door)' 현상은 워싱턴에서 오래된 논쟁이다. 정부에서 쌓은 네트워크와 정보를 민간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적절한가. 반대로, 이런 인재들이 민간 영역에서 활동함으로써 정부와 기업, 학계 사이의 지식 순환이 이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FGS Global은 단순한 PR 회사가 아니다. 전 세계 정부, 기업,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와 전략 커뮤니케이션을 자문하는 곳이다. 이런 회사에서 전직 베이징 외교관의 가치는 명확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논쟁의 핵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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