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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기록에서 찾은 증조할아버지, DNA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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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기록에서 찾은 증조할아버지, DNA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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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자가 19세기 자유 흑인 명부에서 찾아낸 조상의 이야기. 개인사를 통해 본 미국 흑인 역사의 단절과 연결

1851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자유 흑인 명부. 마이크로필름 속 흐릿한 글씨 사이에서 한 기자가 찾고 있던 이름이 나타났다. 헨리 포드햄. 그의 증조할아버지였다.

"예스!" 도서관의 정적을 깨뜨린 외침 뒤에는 22년간의 탐색 끝에 찾아낸 한 조각의 진실이 있었다. 노예로 팔린 소년 해리가 어떻게 자유인 헨리가 되었는지, 그 순간을 찾아낸 것이다.

1,080달러에 팔린 소년의 운명

1829년 3월 27일, 찰스턴의 한 부유한 백인 농장주 리처드 포드햄이사벨라 퍼먼으로부터 노예 4명을 샀다. 그 중 한 명이 해리라는 이름의 소년이었다. 가격은 1,080달러.

해리는 19년간 포드햄의 재산으로 살았다. 총명했던 그는 대장간에서 철공 기술을 익혔고, 포드햄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1848년, 포드햄은 "헨리라는 이름의 흑인 남성"을 곡물 도매업체 오티스 밀스 앤 컴퍼니2,000달러에 팔았다.

흥미로운 점은 가격의 변화다. 19년 사이 해리의 '가치'는 거의 두 배로 올랐다.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은 대가였지만,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서였다.

스스로를 산 남자

가족 구전에 따르면 헨리는 교육이 금지된 노예 신분임에도 글을 배웠고, 독실한 기독교도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을 샀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구매해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자유를 얻었는지는 수십 년간 미스터리였다. 1861년 찰스턴 인구조사에는 헨리의 이름 옆에 'f.p.c.'(자유 유색인)라는 표기가 있었고, 이미 목조 주택 2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자산을 모으려면 최소 몇 년은 걸렸을 것이다.

답은 자유 흑인 명부에 있었다. 1850년에는 없던 이름이 1851년에 나타났다. 헨리 포드햄이 자유인이 된 것은 1850년과 1851년 사이, 그 1년 동안이었다.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

기자인 유진 로빈슨이 조상 찾기에 나선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의 집에는 증조할아버지 존 해먼드 포드햄1903년에 지은 집과 함께 가족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검은 금고 속 오래된 서류들, 사진들,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들.

하지만 헨리 이전의 역사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로빈슨은 이를 "절단된 팔다리의 환상통"에 비유한다. 아프리카에서 온 첫 조상이 누구인지, 어떤 부족 출신인지, 무엇을 믿었는지 - 모든 것이 의도적으로 지워졌다.

노예주들은 체계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의 과거와 서로 간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통제를 위해서였다. 20명, 40명, 60명의 흑인들이 노예 오두막에 갇혀 살면서도 저택의 백인 가족 십여 명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그들이 자신의 힘을 깨닫지 못하게 해야 했다.

DNA가 말해주는 것과 말해주지 못하는 것

2022년 로빈슨은 DNA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예상 범위 안이었다. 34% 나이지리아, 20% 말리, 26% 서아프리카 기타 지역. 나머지 20%는 독일과 영국 혈통이었다.

평균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75-80%의 서아프리카 혈통과 20-25%의 유럽 혈통을 갖고 있다. 로빈슨도 이 범주에 속했다. 하지만 DNA는 구체적인 마을이나 부족을 알려주지 않는다. 언젠가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종이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이 허구적 개념이 리처드 포드햄에게는 헨리를 살 '권리'를, 헨리에게는 자신을 사야 할 의무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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