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연준 위원을 해고했다, 그런데 법원이 복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고한 연준 위원 리사 쿡의 복직 소송이 연준 독립성과 대통령 권한의 경계를 다시 묻고 있다. 이 판결이 글로벌 경제에 미칠 파장은?
10조원이 넘는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한 통의 해고 통지서로 흔들릴 수 있을까? 지난해 8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위원 리사 쿡을 전격 해고하면서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됐다. 하지만 연방법원이 9월 9일 그녀를 임시 복직시키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인사 분쟁을 넘어 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둘러싼 헌법적 쟁점으로 번졌다.
지난 1월 21일, 미국 대법원에서 열린 구두변론에서 대다수 대법관들은 연준의 독립성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판결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
14년 임기가 보장된 자리에서 왜 해고됐나
리사 쿡은 2022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지명해 같은 해 5월 취임한 연준 이사회 위원이다. 연준 이사회 위원들은 연방준비제도법에 따라 14년 임기가 보장되며, 대통령이 해고할 수 있는 경우는 '정당한 사유(cause)'가 있을 때로 제한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쿡 위원을 해고한 명분은 2021년 주택담보대출 신청서에 허위 기재를 했다는 의혹이었다. 법무부는 2025년 9월 이를 수사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쿡 위원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의혹이 제기된 행위가 그녀가 연준 위원으로 임명되기 이전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워싱턴 DC 연방법원은 "상원 인준 이전의 행위는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쿡 위원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법원은 해고 전에 적절한 절차(due process)를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트럼프의 '트루스 소셜' 게시물이 적법 절차?
정부 측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8월 20일 트루스 소셜에 쿡 위원의 사임을 촉구하는 게시물을 올렸고, 5일 후 해고 통보를 했으니 충분한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관들의 반응은 차갑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소송에 쓸 자원이 있다면 왜 청문회를 열지 않았나?"라고 날카롭게 물었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정부 측 변호사를 상대로 연준 독립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라고 마치 1학년 법대생을 다루듯 압박했다.
캐버노 대법관은 2009년 법학 논문에서 "연준 이사회를 직접적인 대통령 감독으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가치 있을 수 있다"고 썼던 인물이다.
연준 독립성이 흔들리면 달러도 흔들린다
이 사건이 단순한 고용 분쟁을 넘어서는 이유는 연준의 특수한 지위 때문이다. 전직 연준 위원들은 법정 의견서에서 "효과적인 통화정책은 장기 목표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며 "14년 임기는 단기적 정치 압력으로부터 위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됐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자들도 별도 의견서에서 연준 독립성 상실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글로벌 충격 시 미국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한국처럼 미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국가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와 폭에 대해 반복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만약 대통령이 정책 차이만으로도 연준 위원을 해고할 수 있다면, 연준의 독립성은 사실상 무너진다.
1935년의 법이 2026년에도 통할까
'정당한 사유'라는 표현은 1913년 연방준비제도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지만, 1933년 삭제됐다가 1935년 연준 독립성에 대한 상원 청문회를 거쳐 다시 추가됐다. 문제는 이 표현의 정확한 의미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학자들은 1935년 당시 연방기관장에 대한 '정당한 사유'의 역사적 의미가 "비효율성, 직무 태만, 또는 직무상 위법행위"였다고 분석한다. 이는 임명 후 재직 중 발생한 행위에만 적용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고용법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티펫 교수는 "적절한 절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당한 사유'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는 대통령이 형식적 절차만 거쳐도 기정사실화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
이 판결은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연준의 금리 정책은 한국의 기준금리 결정과 환율 변동에 큰 영향을 준다. 만약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린다면,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와 달러 표시 부채 관리에도 변수가 생긴다.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되면 달러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추가적인 리스크 요인이 된다.
한국은행도 연준의 정책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정책이 예측하기 어려워지면 한국의 통화정책 운용도 그만큼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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