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딸 김주애, 후계자인가 정통성 카드인가
김주애의 잦은 공개 등장이 북한 권력 승계 신호인지, 아니면 체제 안정을 위한 혈통 정통성 확보 전략인지 분석해본다.
2022년 11월 처음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김정은의 딸 김주애는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과 군사행사에서 꾸준히 목격되고 있다. 올해 1월 1일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영상이 공개되면서 '후계자론'이 다시 불거졌다.
하지만 김주애의 등장을 단순히 후계 구도로만 해석하는 것은 북한 체제의 복잡한 권력 역학을 놓칠 수 있다. 진짜 질문은 '누가 다음 지도자인가'가 아니라 '왜 지금 혈통 정통성을 전면에 내세우는가'일지도 모른다.
후계자 조기 지명의 정치적 비용
지도자 중심 체제에서 후계자를 너무 일찍 공개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김주애의 가시성이 높아질수록 외부에서는 자연스럽게 승계 신호로 해석한다. 문제는 이런 신호가 의도치 않게 '제2의 권력 중심'을 만들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북한처럼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체제에서는 권력의 중복이 공백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후계자가 현실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엘리트들의 충성심이 현재 지도자에서 미래 지도자로 서서히 이동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충성을 다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보 흐름과 기대치가 후계자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김정일도 아들 김정은을 공식 후계자로 발표하기까지 수년간 모호함을 유지했다. 이는 비밀주의가 목적이 아니라 타이밍 통제였다. 후계자 지명이 경쟁을 불러일으키기 전까지 그 순간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전략이었다.
전략적 모호함의 딜레마
승계를 공식화하지 않으면 엘리트들의 관심이 현 지도자에게 집중된다. 보상과 처벌의 회로가 한 축으로 수렴되면서 통제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대외적으로도 '대안이 없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외교적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에도 비용이 따른다. 결정을 미룰수록 공개적 단련의 시간은 줄어든다. 행정 경험과 대중적 신뢰도를 쌓을 기회가 부족해지면, 실제 권력 이양이 일어날 때 압축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는 체제 전환 직후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현재의 안정을 위해 미래의 취약성을 감수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취약성을 줄이는 방법이 반드시 후계자를 조기에 확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권력 이양 시점에 정통성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장치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혈통 정치와 정통성 자산
북한에서 혈통은 권력 이양 시 연속성을 신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공식적인 승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엘리트들을 결속시킬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주애의 지속적인 노출은 그녀를 후계자로 확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환기에 빠르게 활용할 수 있는 '정통성 자산'을 구축하는 것일 수 있다.
실제 권력을 누가 잡든 상관없이, 김주애의 존재는 '김씨 일가 체제'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엘리트들에게 정렬의 기준점을 제공할 수 있다. 공화제 정통성을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왕조적 연속성을 관리해야 하는 혁명 국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김여정의 사례가 참고가 된다. 그녀는 김정일 사망 이후 즉각적인 연속성의 얼굴이 아니었지만, 김정은 체제 초기 메시징과 상징, 내부 결속을 관리하며 초기 불안정성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김주애는 이런 '사후 완충재' 역할을 '사전 보험'으로 발전시킨 버전일 수 있다.
딸이라는 조건의 정치적 효율성
김주애가 딸이라는 점은 '확정 후계자'보다는 '정통성 카드' 해석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군사적 상징이 권위의 핵심인 체제에서 여성 최고지도자는 더 높은 정당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부담이 크다.
반면 직접적인 권력 경쟁자가 아닌 상징적 역할에서는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 성인 남성 후계자에게 위협적이지 않으면서도 혈통 정통성을 공급할 수 있다. 엘리트들 사이에서 제로섬 게임식 편가르기를 덜 유발한다는 계산이다.
체제 입장에서는 연속성을 강화하면서도 조기에 경쟁 중심을 만들지 않는 저비용 방식이다. 김주애는 미래 권력자가 아니라 미래 권력의 정통성을 뒷받침할 자원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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