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 포기는 없다"…한반도 긴장의 새 좌표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핵 보유국 지위는 되돌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남한을 '최적대국'으로 규정하고 경제 발전과 핵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핵을 버리면 경제적 보상을 주겠다는 국제사회의 30년짜리 공식이 공식적으로 폐기됐다.
김정은은 2026년 3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는 "되돌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비핵화와 경제 지원을 맞바꾸는 협상 틀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핵무력을 유지하면서도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핵이 전쟁을 억제하고, 그 덕분에 경제 건설과 주민 생활 향상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선언의 내용: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연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최고인민회의는 헌법 개정을 단행했고, 새 5개년 경제 발전 계획을 법제화했으며, 국방비를 전체 예산의 15.8%로 확정했다. 이 예산에는 핵 억제력 확대와 전쟁 수행 능력 강화를 위한 항목이 명시적으로 포함됐다. 수치가 아닌 법률로 못 박은 것이다.
남한에 대한 규정도 한층 구체화됐다. 김정은은 남한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식 인정하며, 주권 침해 시 "주저 없이, 제한 없이 무자비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는 그가 2023년 말 평화통일 정책을 공식 폐기하고 남북관계를 '두 개의 적대 국가' 관계로 재정의한 이후 이어진 흐름이다. 분석가들은 이번 연설에서 그 입장이 법적으로 성문화됐는지 주목해왔으나, 관영 매체 KCNA 보도는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축전도 낭독됐다. 푸틴은 김정은의 지도력을 치하하며 모스크바와 평양 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왜 지금인가: 타이밍의 맥락
이 선언이 나온 시점은 여러 국제적 변수가 얽혀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은 아직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 테이블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생기기 전에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협상 출발점 자체를 '핵 동결'이나 '핵 축소'가 아닌 '핵 보유국으로서의 군비통제'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읽힌다.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북러 밀착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질적 군사·경제 협력으로 깊어졌다.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병력을 지원하고, 러시아가 기술과 외교적 엄호를 제공하는 구도 속에서 김정은은 과거보다 훨씬 든든한 배후를 확보했다.
이해관계자들의 시각
서울은 즉각적인 군사적 위협보다 이 선언이 법적·제도적으로 고착화되는 것을 더 우려한다. 남북 관계의 적대적 재정의가 헌법에 명시될 경우, 향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대화의 공간이 구조적으로 좁아진다. 한국 국내에서는 독자적 핵 무장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에게 이번 선언은 불편한 현실 확인이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모든 대북 정책 틀이 평양에 의해 정면으로 거부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반도 인근에 전략 자산을 전개하는 것이 지역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김정은의 주장은, 미국 내 일각의 '역외 균형' 전략 논의와 맞닿아 있어 외교적으로 다루기 까다롭다.
북한 주민의 입장은 가장 복잡하다. 세계 최빈국 수준의 경제, 만성적 식량 부족, 국제 제재로 인한 고립 속에서 김정은은 핵이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5개년 계획의 목표—전력 생산 확대, 석탄 증산, 식량 증산, 주택 건설—는 수십 년째 반복되는 과제들이다. 핵과 경제를 동시에 잡겠다는 '병진 노선'의 현실적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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