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가 닫히자, 세계의 부엌도 꺼졌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인도 식당가부터 한국 샤워 시간까지, 32억 명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벵갈루루의 어느 식당 유리문에 손으로 쓴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이란-미국 전쟁으로 인한 가스 실린더 부족으로 로티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전장의 포성이, 인도 서민의 밥상을 직접 건드린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촉발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지금 전 세계 32억 명의 일상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다.
폭 21마일, 세계 경제의 목줄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이 21마일(약 34km)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좁은 수로가 막히자, 전 세계 원유 수출의 20%, LNG의 20%, 해상 비료 물동량의 3분의 1, 황 수출의 거의 절반이 멈췄다. 봉쇄 이후 이 해협을 통한 상품 운송은 95% 급감했다.
이 숫자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각국 정부가 내린 조치들을 보면 된다. 스리랑카는 매주 수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라오스는 학교 수업일을 주 3일로 줄였다. 이집트는 상점과 카페의 오후 9시 이후 영업을 금지했다. 태국 공무원들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한국 대통령은 국민에게 샤워 시간을 줄여달라고 호소했다. 이것은 전시(戰時) 정책이다. 정작 이 나라들 중 어느 곳도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데.
인도의 주방이 꺼지고, 방글라데시의 밭이 말라간다
식량 위기는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인도는 가정용 LPG 실린더의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를 통해 수입한다. 봉쇄 직후 암시장 가격은 3배 가까이 뛰었다. 뭄바이의 한 70년 전통 식당은 라마단 특선 메뉴를 단 4가지로 줄였고, 도사(dosa)는 가스 불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예 메뉴에서 사라졌다. 타밀나두주에서만 1만 곳 가까운 식당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
더 무서운 건 비료 위기다. 걸프 지역은 세계 요소(urea) 수출의 약 3분의 1을 담당한다. 봉쇄 시점이 최악이었다. 북반구 농부들이 봄 파종을 앞두고 비료를 뿌려야 할 바로 그 시기였다. 방글라데시는 국영 요소 공장 5곳 중 4곳을 가동 중단했다. 네팔에서는 요소 가격이 40% 올랐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전 세계적으로 4,500만 명이 추가로 급성 식량 불안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 기아 수준에서 15% 증가다.
석탄의 귀환, 그리고 기후의 역주행
에너지 공백은 석탄으로 채워지고 있다. 일본은 노후 석탄 발전소의 가동률 제한(50%)을 해제하기로 했다. 한국도 계절별 석탄 발전 상한선을 없애고 석탄 발전소 3곳의 폐쇄를 연기했다.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석탄 설비를 확대하고 있다. 독일도 폐쇄한 석탄 발전소 재가동을 검토 중이다.
석탄 기업들은 호황이다. 호주의 Yancoal은 개전 이후 40% 상승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Core Natural Resources는 30% 올랐다. 문제는 한 번 켜진 석탄 발전소는 정치적으로 다시 끄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단기 위기 대응이 장기 탄소 고착(carbon lock-in)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 정부는 식당과 호텔이 나무, 건조 농작물 부산물, 소 배설물을 연료로 쓸 수 있도록 공식 허가했다. 수년간 쌓아온 청정 연료 전환의 성과가 행정명령 하나로 뒤집혔다.
한국, 남 일이 아니다
한국은 이 위기에서 유독 복잡한 위치에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그 상당 부분이 중동을 경유한다. 대통령의 '샤워 단축' 호소는 상징적이지만, 실제 충격은 더 구조적이다.
현대제철, 포스코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전기료 인상 압박에 직면해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 수급 차질로 조업을 조정 중이다. 한국가스공사의 LNG 수급 계획은 전면 재검토 상황이다. 주식 시장에서는 석탄 관련주와 원자력 관련주가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한국이 탈원전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 위기를 계기로 다시 커지고 있다.
위기 속 역설: 전기차의 봄?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기가 에너지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네팔에서는 신차 판매의 70% 이상이 이미 전기차다. 파키스탄에서는 전기 릭샤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중국의 BYD는 전쟁 이전 전망 대비 해외 판매가 15%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한 에너지 분석가는 이를 "아시아의 우크라이나 모멘트"라고 불렀다. 러시아의 침공이 유럽을 풍력·태양광으로 밀어붙인 것처럼, 이 충격이 아시아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 완성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지금 당장 밥을 못 짓는 사람에게, 먼 미래의 청정에너지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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