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치안을 맡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트럼프 정부의 방위군 배치가 라틴아메리카의 경험과 닮아가는 이유. 치안의 군사화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분석한다.
2025년 8월, 워싱턴 D.C. 시민들은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 군복을 입은 방위군이 거리를 순찰하는 모습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범죄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연방 차원에서 방위군을 배치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해 1월 워싱턴의 강력범죄는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었다.
이는 단순한 치안 강화 조치가 아니었다. 미국이 오랫동안 지켜온 '민간 치안과 군사력의 분리'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데자뷰
트럼프 행정부는 워싱턴에 이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멤피스, 뉴올리언스, 포틀랜드 등 주요 도시에도 방위군을 파견했다. 매번 '범죄 대응'이나 '공공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구스타보 플로레스 마시아스 메릴랜드대 공공정책대학원 학장은 이런 패턴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익숙한 광경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인들이 범죄 대응을 위해 군대를 배치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흔한 일"이라며 "하지만 이런 정책은 임시 조치로 시작되어도 정상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에서 치안의 군사화는 다음과 같은 패턴을 보여왔다:
- 범죄 증가 → 군대 배치 → 임시 조치의 정상화 → 행정부 권한 확대 → 민간 기관 약화 → 시민권 침해
멕시코의 교훈: 20년간의 실험
멕시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6년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군대를 대대적으로 투입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살인율은 여전히 높고, 치외법권적 살인과 강제실종 같은 인권 침해는 만연해졌다.
심지어 비군사화를 공약으로 내건 좌파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2018-2024)조차 기존 정책을 뒤집기 어려웠다. "일단 군인이 민간 경찰을 대체하면, 비상사태와 일상적 통치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이 멕시코가 얻은 쓰라린 교훈이다.
브라질과 에콰도르: 정상화된 군사 개입
브라질에서는 1992년부터 2025년까지 대통령들이 평균 매년 5차례씩 '법과 질서 보장' 명령을 발령했다. 리우데자네이루 파벨라 지역에 군대가 투입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과도한 무력 사용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군사 법정에서 이뤄져 피해자들이 구제받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에콰도르는 군사 통치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이후 조직범죄 증가를 빌미로 연속적인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군인들이 영장 없이 수색하고 거리를 순찰하는 것이 '예외적' 조치에서 '일상적' 공공안전 정책으로 변했다. 하지만 살인율은 2020년부터 2025년 사이 5배 이상 증가했다.
엘살바도르: 종착역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엘살바도르다.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2022년30일 한정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이미 47차례 연장되어 사실상 영구 통치 체제가 되었다. 집회·결사의 자유, 적법 절차, 변호인 접견권이 정지되고, 무기한 구금과 궐석재판이 가능해졌다.
살인 신고 건수는 크게 줄었지만, 대량 구금과 무기한 구속, 사법부 독립성 해체라는 대가를 치렀다. 선거는 여전히 치러지지만 행정부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사라졌다.
한국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한국은 어떨까? 우리 헌법은 계엄령과 비상계엄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전시나 사변에 한정된다. 평시 치안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법적 제약보다 정치적 유혹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범죄나 사회 불안이 증가할 때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면, 정치인들은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
특히 한국처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은 국가에서는 이런 유혹이 더욱 클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나,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강력한 정부 조치에 대한 지지가 높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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