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전쟁, 포스코가 판을 바꾼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희토류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말레이시아·라오스·미국을 잇는 다층 전략, 그 배경과 의미를 짚는다.
전기차 모터 하나를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한 원소가 있다. 디스프로슘, 터븀. 이름도 낯선 이 중희토류 원소들이 없으면 고성능 영구자석이 만들어지지 않고, 영구자석이 없으면 전기차 모터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원소들의 90% 이상을 중국이 쥐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26년 3월 23일 이 구조를 흔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단순한 투자 발표가 아니다. 한국 기업이 처음으로 희토류 채굴부터 정제, 자석 생산까지 전 밸류체인을 직접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다.
포스코의 3단계 전략: 한국→동남아→미국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번 계획을 세 축으로 설계했다. 첫째, 포스코인베스트먼트와 함께 250억 원 규모의 기업벤처캐피털(CVC) 펀드를 조성하고, 국내 희토류 정제 기업에 80억 원을 우선 투자한다. 국내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다.
둘째, 동남아시아로 뻗는다. 말레이시아 파트너사와 3,000만 달러 규모의 합작 정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라오스에서도 별도의 정제 사업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동남아에서만 연간 4,500톤의 정제 희토류를 확보하고, 추가 투자로 1만 톤 이상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셋째, 미국에 직접 공장을 짓는다. 미국 광물 기업 ReElement Technologies와 손잡고 연간 3,000톤 규모의 희토류 정제 공장을 건설해 2027년 가동을 시작하고, 2028년까지 연간 3,000톤 규모의 영구자석 생산 시설도 갖춘다. 정제에서 완성 부품까지, 미국 땅에서 직접 만들겠다는 것이다.
왜 지금인가: 지정학이 공급망을 흔들다
이 전략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최근 몇 년의 흐름을 봐야 한다. 중국은 2023년부터 희토류 관련 기술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2024년에는 갈륨·게르마늄에 이어 일부 희토류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희토류라는 물리적 자원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홀딩스도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해 호주 리튬 광산 추가 지분 확보와 아르헨티나 리튬 브라인 프로젝트에만 1조 1,000억 원을 쏟아부었다. 배터리 소재에서 모터 소재로, 포스코 그룹 전체가 전기차 공급망의 핵심 소재를 직접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심 광물 공급망의 자국화를 강력히 추진 중이다.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사용하는 전기차에 세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미국 공장은 단순한 생산 거점이 아니라, 미국 시장 접근권을 확보하는 '정치적 투자'이기도 하다.
한국 산업에 어떤 의미인가
현재 한국의 전기차 모터용 희토류 자석은 대부분 중국산이거나 중국을 거쳐 온 소재로 만들어진다. 현대자동차, LG이노텍, 삼성전기 등 전기차 부품 생산 기업들은 이 구조적 취약점을 인지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27~2028년 미국 생산을 시작하면, 국내 부품사들은 처음으로 중국산이 아닌 안정적인 희토류 자석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미국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한국 부품사들에게는 IRA 요건을 충족하는 소재 조달 경로가 생기는 셈이다.
투자자 관점에서도 주목할 대목이 있다. 희토류 관련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될 때마다 주가가 급등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이번 발표는 단기 테마가 아니라 2027~2028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투자 스토리다.
| 구분 | 규모 | 시기 |
|---|---|---|
| 국내 정제사 투자 | 80억 원 | 즉시 |
| 말레이시아 합작 정제 | 3,000만 달러 | 진행 중 |
| 동남아 연간 확보량 | 4,500톤 → 1만 톤+ | 단계적 |
| 미국 정제 공장 | 연 3,000톤 | 2027년 |
| 미국 영구자석 공장 | 연 3,000톤 | 2028년 |
남은 질문들
물론 이 계획이 순탄하게 실행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말레이시아와 라오스의 정치적 안정성, 현지 환경 규제, 실제 채굴·정제 역량 확보까지 변수는 많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더 강화한다면 소재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한국 기업이 희토류 공급망을 다각화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라오스, 미국으로 분산된 공급망이 과연 '중국 의존도 탈피'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지정학적 리스크를 새로 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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