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선택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행동경제학의 아버지가 고백하는 '넛지' 정책의 한계. 개인 책임론이 어떻게 진짜 해결책을 가리고 있는가.
환경운동가인 한 친구는 유럽을 오가며 탄소 포집 사업을 하면서도,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코노미석을 선택하고, 먹을 것 하나하나까지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며 살아간다. 그는 지구를 구하는 일을 하면서도 "뭔가 잘못하고 있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이런 감정은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간 기업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회 문제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해왔다. 1971년 포장재 회사들이 후원한 '우는 인디언' 광고나, 2000년대 초 세계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BP가 대중화한 '개인 탄소발자국' 개념이 대표적이다.
넛지의 탄생과 확산
행동경제학자들은 이런 개인 책임론을 선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8년 캐스 선스타인과 리처드 탈러가 펴낸 『넛지』는 200만 부 이상 팔리며 정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더 나은 통치는 정부 강제보다는 선택의 자유를 통해 이뤄진다"는 이들의 주장은 매력적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각각 정부 내에 '넛지팀'을 만들었다. 정치인들에게 넛지는 완벽한 해결책처럼 보였다. 세금이나 규제, 금지령 없이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영국에서는 쓰레기통 근처에 지켜보는 눈 포스터를 붙여 시민들의 선량한 행동을 유도했다. 코펜하겐에서는 인도에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발자국을 그려놓았다. 이런 미묘한 심리적 신호들이 사람들을 더 나은 선택으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넛지의 한계가 드러나다
하지만 행동경제학 분야를 공동 창시한 조지 뢰벤스타인과 영국의 행동과학자 닉 채터는 최근 저서 『당신 탓이야』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넛지 정책의 효과는 미미했고, 오히려 진짜 해결책에서 관심을 돌리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보자. "플라스틱과 플라스틱 폐기물의 확산은 부주의한 개별 소비자들 때문이 아니다. 플라스틱 산업의 끝없는 성장 때문이다." 진짜 해결책은 일회용 플라스틱 생산 제한이지, 개인의 분리수거 노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퇴직연금 자동가입 제도도 마찬가지다. 2024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직원들을 퇴직연금에 자동 가입시켰지만 많은 직원들이 나중에 돈을 빼갔다. 결과적으로 소득의 1%도 채 안 되는 추가 저축 효과만 있었다. 반면 호주는 모든 근로자를 12% 기여율로 강제 가입시키고 55세 전 인출을 금지한다. 그 결과 호주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GDP의 15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개인 vs 시스템: 프레임의 전쟁
저자들은 이를 'i-프레임'(개인)과 's-프레임'(시스템)의 대립으로 설명한다. i-프레임에 집중할수록 더 효과적인 s-프레임 해결책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세금 신고를 보자. 미국에서는 개인이 복잡한 세무신고를 직접 해야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정부가 계산해서 고지서나 환급금을 보내준다. 하지만 미국의 세무업계는 매년 수십억 달러의 수수료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 선택권'을 내세워 이런 변화를 막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구축 효과'다. 뢰벤스타인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이 에너지 절약 넛지를 받은 후에는 탄소세 같은 시스템적 해결책을 덜 지지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세먼지 문제를 개인의 마스크 착용이나 대중교통 이용으로만 해결하려 하거나, 부동산 문제를 개인의 '영끌'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해결책은 산업구조 개편이나 주택공급 정책에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의 방역수칙 준수를 강조하면서 정작 의료시스템 확충이나 백신 공급체계 같은 근본적 대책은 뒤로 밀렸다. 미국에서는 전 야구선수 오브리 허프가 "마스크를 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개인주의가 극단화됐다.
새로운 길 찾기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치에서 돈을 빼내고, 정부와 기업 간 회전문을 막고, 빅테크의 온라인 남용을 규제하는 것들이다.
흥미롭게도 미국에서도 개인의 자유를 앞세운 큰 변화들이 있었다. 동성결혼 합법화가 대표적이다. 상당수 국민이 눈에 보이는 지지를 보이자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진보 포퓰리스트들도 정부를 기업 권력에 맞서는 개인 자유의 보호자로 포장하며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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