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한 마디에 유가가 출렁인다
중동 전쟁 긴장 속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국제 유가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이 해협이 막히면 한국 경제에 어떤 파장이 올까?
트레이더 한 명이 스크린을 응시하며 손가락을 멈췄다. 호르무즈 해협에 관한 발언 하나가 방금 뉴스 피드에 떴다. 몇 초 만에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1.8% 뛰었다가, 다음 발언이 나오자 다시 1.2% 빠졌다. 이게 지금 에너지 시장의 일상이다.
호르무즈가 왜 이렇게 중요한가
페르시아만에서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호르무즈 해협은 너비가 가장 좁은 곳에서 39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좁은 물길을 통해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 하루 1,700만 배럴이 흘러나간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의 원유가 모두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한국에는 더 직접적인 숫자가 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중동산이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거쳐 온다. 해협이 막히는 건 한국의 정유·석유화학 산업에 원재료 공급선이 끊기는 것과 다름없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국내 4대 정유사가 모두 직격탄을 맞는다.
왜 지금, 이 공포가 다시 살아났나
중동의 긴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2026년 초 상황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르다. 이란과 미국 사이의 핵 협상이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고,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이 이어지면서 해운 보험료가 급등했다. 여기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가 지역 전체로 번지는 양상이다.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실제 봉쇄 가능성 때문만이 아니다. 불확실성 자체가 가격이 된다. 트레이더들은 '봉쇄될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봉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베팅한다. 그래서 한 관리의 발언 한 마디, 군함 한 척의 이동이 유가를 움직인다.
승자와 패자: 같은 뉴스, 다른 계산서
유가 상승의 수혜자와 피해자는 선명하게 갈린다.
유가가 오르면 웃는 쪽: 국내 정유사들은 단기적으로 재고 평가이익을 누린다. 이미 싸게 사둔 원유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에 대규모 플랜트를 수주한 현대건설, 삼성엔지니어링 같은 기업들도 발주 증가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유가가 오르면 우는 쪽: 문제는 이 상승이 지속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항공유 가격에 민감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연료비 부담이 커진다. 납사(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 기업들의 원가 압박이 심해진다. 그리고 결국 그 비용은 소비자 물가로 전가된다.
한국 소비자에게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주유소 기름값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국내 휘발유 가격은 통상 리터당 50~70원 오른다. 월 100리터를 주유하는 운전자라면 한 달에 5,000~7,000원을 더 내는 셈이다. 작아 보이지만, 난방비·식료품 물가와 함께 오르면 가계 체감 압박은 배가된다.
이란은 정말 막을 수 있을까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2018년, 2019년에도 같은 위협이 나왔다. 그런데 실제로 막은 적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이란 자신도 이 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출하기 때문이다. 봉쇄는 자해다.
그렇다고 위협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이란이 직접 막지 않더라도, 후티 반군 지원이나 해협 내 기뢰 부설 같은 '회색지대' 전술로 실질적인 통항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시장이 두려워하는 건 완전한 봉쇄가 아니라, 보험료와 우회 비용을 끌어올리는 부분적 교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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