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스캔들, 노르웨이 엘리트 사회를 뒤흔들다
성범죄자 엡스타인과 연결된 노르웨이 전 총리가 부패 수사를 받게 되면서, 글로벌 엘리트들의 네트워킹 문화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노르웨이 총리를 지낸 토르비욘 야글란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부패 혐의 수사를 받게 됐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글로벌 엘리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수사의 시발점
지난주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문서들이 폭탄선언이었다. 야글란과 엡스타인 사이에 수년간 주고받은 이메일들이 드러났고, 심지어 야글란이 엡스타인의 집에 머물렀다는 정황까지 포착됐다.
노르웨이 경제범죄수사청(오코크림)은 목요일 야글란에 대한 "중대한 부패" 혐의 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수사 기관은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야글란이 노벨위원회 위원장과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을 지낸 국제기구 전직 수장으로서 갖고 있던 면책특권 해제를 요청했다.
팔 뢰세트 오코크림 청장은 "그의 지위와 관련해 선물, 여행, 대출 등을 받았는지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르웨이 외무장관 에스펜 바르트 에이데도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한다"며 면책특권 해제 제안을 유럽평의회 각료위원회에 상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르웨이 엘리트 사회의 연쇄 파장
야글란만이 아니다. 노르웨이 왕세자비 메테-마리트도 이번 주 초 엡스타인과의 광범위한 접촉 사실이 드러나자 "잘못된 판단"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세계경제포럼(WEF) 최고경영자 뵈르게 브렌데의 연루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노르웨이 외무장관을 지낸 브렌데는 엡스타인과 여러 차례 비즈니스 만찬을 가졌고 이메일과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WEF는 즉시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
브렌데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2018년 뉴욕 방문 중 당시 노르웨이 유엔 부대사의 부인이었던 테르예 뢰드-라르센의 초대로 "미국 투자자"로 소개된 엡스타인과 만찬을 가졌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는 엡스타인의 과거나 범죄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네트워킹의 어두운 이면
이 사건은 국제 엘리트들의 네트워킹 문화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고위 정치인들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어떻게 검증 없이 "투자자"와 만찬을 가질 수 있었을까?
엡스타인은 2019년 성매매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감옥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구축했던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는 여전히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그의 개인 섬과 맨해튼 저택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노르웨이처럼 투명성과 청렴성으로 유명한 국가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에서 4위를 기록한 노르웨이의 정치 엘리트들이 어떻게 이런 인물과 연결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커진다.
면책특권과 책임의 경계
야글란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국제기구 전직 수장의 면책특권 문제다. 그는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외교적 면책특권을 갖게 됐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이를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국제기구의 독립성과 개별 국가의 사법권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보여준다. 면책특권이 범죄 은닉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작동한 것이다.
브렌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WEF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에게 2019년 엡스타인과의 접촉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하지만, 슈밥은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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