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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서에 서명했지만,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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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서에 서명했지만,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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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레바논-이스라엘 기본협정이 체결됐지만 헤즈볼라는 거부,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을 계속한다. 80년 분쟁사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협정서에 서명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다. 레바논 대사와 이스라엘 대사가 나란히 앉아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80년 만의 협정, 그러나 '만약'이라는 전제

2026년 6월,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기본협정(framework agreement)을 체결했다. 두 나라 사이에 이 정도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1949년 유엔 중재 휴전협정 이후 거의 80년 만이다. 협정의 내용은 야심차다. 양국의 평화로운 관계 수립, 헤즈볼라 무장해제 로드맵, 이스라엘의 레바논 완전 철수, 레바논의 자국 영토에 대한 주권 회복이 명시됐다.

문제는 이 모든 조항이 현재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협정을 전면 거부했다.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군사행동은 레바논 정부의 국내 정치적 정당성을 갉아먹고 있다. 협정을 이행해야 할 당사자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반복된 패턴: 휴전은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레바논-이스라엘 분쟁사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불편한 패턴을 발견했다. 1993년, 1996년, 2006년, 2024년, 2026년 4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휴전은 매번 반복됐고, 매번 결국 깨졌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각 합의는 전투를 일시적으로 멈추는 역할을 했을 뿐, 양측 모두 이 시간을 군사력 재건과 정치적 입지 강화에 활용했다.

역사적 선례 중 가장 교훈적인 것은 1983년 협정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수를 대가로 평화와 정상화를 약속한 이 협정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붕괴됐다. 반정부 세력이 레바논 군 진지를 공격하면서 레바논 정부의 권위가 무너졌고, 군대는 종파와 이념 노선을 따라 분열됐다. 협정이 실패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행할 능력을 가진 국가가 사라진 것이다.

그 공백 속에서 헤즈볼라가 탄생했다. 시아파 이슬람 무장세력 네트워크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1982년 이스라엘 군 기지 공격으로 존재를 알린 뒤, 1983년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과 미 해병대·프랑스 평화유지군 막사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이후 수십 년간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 저항'이라는 서사를 무기로 레바논 정치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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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창은 좁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과거와 완전히 같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의 맥락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헤즈볼라의 전력을 상당히 약화시켰다. 레바논 내 여론도 달라졌다. 시아파 공동체 내에서도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가 과거보다 약해졌고, 이 조직을 지원해온 이란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레바논이 불필요한 전쟁에 반복적으로 끌려들어간다는 피로감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2025년 취임한 조제프 아운 대통령과 나와프 살람 총리는 이 변화를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2006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헤즈볼라 무장해제와 레바논 남부에 대한 국가 권위 회복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수십 년간 선언에만 머물렀던 조항들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가능성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 창이 열려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스라엘 내부 정치가 변수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있다. 레바논 군사작전을 지속하는 것이 형사재판 절차를 늦추고, 전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유리하다는 국내 정치적 계산이 작동할 수 있다.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지속이라는 상황을 '저항의 명분'으로 활용해 조직의 재건을 꾀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을 계속할수록 헤즈볼라를 만들어낸 1980년대의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높아진다. 무너뜨리려는 적에게 오히려 새 생명을 불어넣는 셈이다.

외교가 작동한 전례는 있다

전문가들은 외교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는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 군 지휘관들은 유엔의 중재 하에 수에즈 운하변에서 직접 대면했다. 그 만남이 결국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으로 이어졌다.

더 최근의 사례도 있다. 미국 외교관 아모스 호크스타인2022년 레바논-이스라엘 해상 경계 협정을 중재했다. 이후 육상 국경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지만,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과 그 이후의 연쇄 전쟁으로 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 사례는 지속적인 미국의 관여가 실질적인 진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전문화된 외교'다. 협정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끝나는 외교가 아니라, 이행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당사자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전문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레바논 군이 남부 전역에 국가 권위를 실질적으로 확장하려면 안보 지원과 재정 지원도 함께 뒤따라야 한다.

본 콘텐츠는 AI가 원문 기사를 기반으로 요약 및 분석한 것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원문 확인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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