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총리, 예산 시스템 대수술 예고
일본 총리가 전략 투자를 다년도 예산으로 분리하는 개혁안을 발표. 민간 자본 유치와 예측 가능성 확보가 목표. 한국 기업들에게 미칠 파급효과는?
1년짜리 예산의 한계
일본 정부가 매년 반복해온 예산 편성 방식이 바뀐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17일 발표할 정책 연설 초안에 따르면, 전략적 투자는 기존 연간 예산 사이클에서 분리해 다년도 틀로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일본은 매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장기 프로젝트도 1년 단위로 쪼개어 승인받아야 한다. 반도체 공장 건설이나 인프라 투자처럼 3-5년이 걸리는 사업도 매년 예산 심의를 받아야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민간 기업들은 "내년에도 예산이 나올까?"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를 주저해왔다.
링펜스 예산, 무엇이 달라지나
새로운 '링펜스(ringfenced)' 예산 시스템의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정부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분야는 미리 다년도 예산을 확정해두고, 연간 정치적 변동에 흔들리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장 유치 프로젝트에 1조엔이 필요하다면, 이를 5년간 매년 2000억엔씩 나누어 지원하되, 정권이 바뀌거나 경제 상황이 변해도 약속된 금액은 지켜진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은 이미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독일은 기후 변화 대응 투자를,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투자를 다년도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이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투자에 확실한 예산 지원을 약속한다면, 현지 진출이나 합작 투자를 검토할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 도쿄일렉트론이나 신에츠화학 같은 일본 반도체 소재·장비 기업들이 안정적인 정부 지원을 받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 같은 기업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일본이 전기차 배터리나 수소 에너지 분야에 다년도 투자를 확정한다면, 해당 분야 협력이나 경쟁 구도가 재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계산과 경제적 현실
다카이치 총리의 이번 발표는 단순한 예산 제도 개선을 넘어선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그가 장기 집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년도 예산은 차기 정권도 지켜야 할 약속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재정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가 부채비율이 GDP의 260%에 달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출 약속을 하는 것은 부담이다. 특히 고령화로 사회보장비가 매년 증가하는 가운데, 전략 투자 예산을 별도로 확보하려면 다른 분야 예산을 줄이거나 증세가 불가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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