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도네시아를 잃어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미국-인도네시아 관계가 정체되면서, 세계 4위 인구 대국이 중국과 러시아로 기울고 있다. 동남아시아 패권 경쟁의 새로운 국면.
세계 4위 인구 대국이자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국인 인도네시아가 미국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2억 7천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이 거대한 군도국가가 중국과 러시아 쪽으로 기울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이 흔들리고 있다.
관계 냉각의 신호탄: 관세 전쟁
트럼프 2기 행정부가 2025년 1월 출범한 이후,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미국이 인도네시아에 32%라는 징벌적 관세를 부과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협상을 통해 19%로 낮췄지만, 이미 신뢰는 금이 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세를 넘어선 전방위적 무관심이다. 미국 외교관의 증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전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양국 간 새로운 경제협정이나 안보협력 합의는 단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다.
이는 오바마 시절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2010년 양국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SP)를 체결했을 때가 관계의 정점이었다. 바이든과 조코위 대통령이 2023년 11월 새로운 CSP에 서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실질보다는 상징"에 그쳤다고 평가한다.
전문성의 공백: 인도네시아를 아는 미국인이 없다
문제는 단순한 정책 우선순위가 아니다. 미국 내에서 인도네시아를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공직자 해고는 국무부, 국방부, 국가안보회의에서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전문가들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로 인해 워싱턴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포괄적 전략을 수립할 지식 기반 자체를 잃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양국 모두 상대국에 상주 대사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2025년 4월 카말라 라크디르 대사를 소환한 이후 자카르타에 정식 대사를 두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2년간 워싱턴에 대사가 없다가 최근에야 인드리요노 수에실로를 새 대사로 임명했다.
거래적 관계로 변한 외교
양국 분석가들은 현재 미국이 모든 양자·다자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나 약속은 무시하고, 오직 즉각적인 경제적·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에게 인도네시아의 가치는 이제 핵심 광물, 미군함 통과권 등 구체적 이익으로만 측정된다. 일본과 한국은 인도-태평양 안보 구조의 핵심축이고, 대만과 필리핀은 중국 견제에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인도네시아는 그런 명확한 역할이 없다는 인식이다.
인도네시아도 맞대응하고 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미국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부분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현지 조달 요구사항을 철폐했다. 대신 팜오일, 차, 커피 등 주요 수출품에 대한 무관세 시장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군사협력도 흔들리는 중
양국 관계 악화는 국방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연례 수퍼 가루다 실드 훈련 같은 "소프트" 협력은 유지되고 있지만, "하드" 협력은 불투명하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24대F-15EX 전투기 구매 계획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여전히 구매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제조사인 보잉은 아직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비동맹 외교정책도 걸림돌이다. 어떤 국가와도 공식적인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미국과의 대규모 안보 파트너십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중국·러시아가 파고드는 틈
미국의 무관심 사이로 중국과 러시아가 파고들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인도네시아가 이 두 국가와 체결한 경제협정들을 보면, 지정학적 균형추가 기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신호는 미국 기업들, 특히 핵심 광물 분야 투자자들이 여전히 인도네시아를 유망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2025년 1월 조지타운 대학교 외교대학원이 자카르타 분교를 개설하며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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