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대한 인류 범죄" — 유엔 노예제 결의, 무엇을 바꾸나
유엔 총회가 대서양 노예무역을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로 선언했다. 123개국 찬성, 미국·영국 반대·기권. 배상 논의는 어디로 향하는가?
영국이 1830년대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보상금을 지급했다. 노예였던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노예를 소유했던 사람들에게. 오늘날 가치로 약 21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2026년 3월, 유엔 총회는 대서양 노예무역을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로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123개국이 찬성했고, 3개국(미국, 아르헨티나, 이스라엘)이 반대했으며, 영국과 EU 회원국을 포함한 52개국이 기권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상징 이상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가나가 제안하고 아프리카·카리브해 국가들이 주도한 이번 결의안은, 유엔 회원국들에게 노예무역에 대한 공식 사과와 배상 기금 조성을 검토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의안은 구체적인 금액을 명시하지 않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결의 환영 성명에서 "많은 서방 국가들의 부는 빼앗긴 생명과 빼앗긴 노동 위에 세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노예제를 "단순한 강제 노동이 아니라, 대규모 착취와 의도적 비인간화의 기계"였다고 규정했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1,200만~1,50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 이송됐다. 이 중 약 200만 명이 이른바 '노예선' 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많은 노예를 받아들인 나라는 브라질로,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포함해 490만 명이 유입됐다. 오늘날 브라질에서 흑인은 백인보다 빈곤층에 속할 확률이 두 배 높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인종차별 연구원 알마즈 테페라는 "유엔에서 이 논의가 이뤄진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으로 크고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더 상징적인 가치에 가깝다"는 점을 인정했다.
배상, 얼마를 말하는 건가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2023년 카리브해 15개국 연합체 카리콤(CARICOM)은 과거 식민 열강들이 카리브해 국가들에 최소 3경 3,000조 원(약 33조 달러)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같은 해 국제사법재판소의 패트릭 로빈슨 판사는 노예 노동으로 이익을 얻은 31개국이 총 107조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계산을 내놨다.
비교하자면, 2025년 미국 연방 예산 전체가 7조 1,000억 달러다. 이 수치들은 현실적인 청구서라기보다 역사적 부채의 규모를 가늠하게 하는 숫자에 가깝다.
역사적 선례가 없는 건 아니다. 독일은 1952년부터 현재까지 나치 피해자인 유대인들에게 약 80조 원(800억 달러) 이상을 지급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노예 후손들에게 직접 배상금을 지급한 국가는 지금까지 단 한 곳도 없다. 2022년 네덜란드는 노예제에 공식 사과했지만, 직접 배상 대신 2,300억 원(2억 3,000만 달러) 규모의 '사회적 이니셔티브 기금'을 조성하는 데 그쳤다.
퀸즈대학교 벨파스트의 법학자 루크 모펫은 "법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왜 반대하는가
미국 측 입장은 단순한 거부가 아니었다. 댄 네그레아 유엔 주재 미국 부대사는 "일부 인도에 반한 죄가 다른 것보다 덜 심각하다는 주장은 역사 속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홀로코스트, 아르메니아 학살, 르완다 제노사이드 등과의 비교 우위를 설정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논리다.
반대론의 또 다른 축은 실용적 문제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이 조상의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피해자 후손을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노예제가 당시 법적으로 합법이었다는 점에서 법적 청구권이 성립하는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조차 재임 중 배상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퇴임 직전인 2016년 그는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배상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털어놓았다.
영국의 데이비드 래미 전 외무장관은 2024년 11월 나이지리아 방문 중 배상은 "현금 이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영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상징과 현실 사이
스페인 식민주의를 연구하는 셀레스테 마르티네스 박사는 "아무도 과거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현재에 남아 있는 그 결과를 다루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노예제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인종차별과 불평등의 형태로 살아있다."
가나 기반 디아스포라 아프리카 포럼의 에리에카 베넷 박사는 이번 투표가 개인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내 조상이 마침내 안식을 얻었다는 뜻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그녀는 이 감정을 외부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의 배상 운동 활동가 에스더 쇼세이 박사는 냉정하다. "좋은 승리이지만, 이것은 의향 선언에 불과하다. 진짜 싸움은 유엔이 아니라 거리에서 벌어질 것이다. 노예제의 역사와 그 지속적인 영향에 대해 여전히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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