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선언, 미국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뮌헨 안보회의에서 드러난 유럽의 현실. 미국 보호막 없이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유럽이 선택한 길과 그 대가는?
€20만-50만유로. 유럽의 중소기업이 AI 시스템 하나를 배포하기 위해 규제 준수 과정에서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이 숫자는 유럽이 직면한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과도한 규제로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뮌헨에서 들린 냉정한 현실 인식
올해 뮌헨 안보회의에서 유럽 관료들은 더 이상 충격받지 않았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을 "영원한 유럽의 자식"이라고 표현했지만, 참석자들은 그 이면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냈다. "이제 할머니 혼자 살아가세요."
작년 J.D. 밴스 부통령의 직설적인 발언과 루비오의 완곡한 표현 사이에는 문법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 유럽 외교관은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점에서 루비오와 밴스는 사실상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회복이라는 절박한 과제
뮌헨, 베를린, 브뤼셀을 오가며 만난 관료들과 전문가들은 두 가지 과제에 대해 입을 모았다. 유럽이 시급히 경쟁력을 되찾고 전략적 자율성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유럽은 기술과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경쟁 우위를 되찾지 못하면, 강대국 간 협상에서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EU는 여전히 기초 연구와 혁신에서는 뛰어나다. 하지만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으로 바꾸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과잉 규제라는 족쇄
문제의 일부는 잘 알려진 과잉 규제에서 비롯된다. EU AI 법에 따르면, "고위험"으로 분류되는 AI 시스템을 배포하려는 중소기업은 규제 준수 과정에서만 €20만-50만유로를 지출해야 한다.
시장 분할도 걸림돌이다. 27개 회원국마다 법적 체계, 세제, 비즈니스 관행이 크게 다르다. 이는 유럽 기술 기업들이 미국이나 중국 경쟁사만큼 빠르게 규모를 키우는 것을 방해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국내 시장에서 검증한 후 해외로 진출하는 것과 달리, 유럽 기업들은 처음부터 파편화된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한국이라는 통합된 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후 글로벌로 나아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략적 자율성의 진짜 의미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은 단순히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과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맞서면서도, 자체적인 기술 생태계와 방산 능력을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 길은 험난하다. 방산 투자를 늘리면 사회복지 예산이 줄어들 수 있고,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 유럽이 자랑하는 개인정보보호와 소비자 권리 보호가 약화될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중국은 이미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했고, 미국은 반도체와 AI에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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