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더 이상 '샌드백'이 아니다... 미중 견제 카드 꺼내나
트럼프 관세 위협과 중국 희토류 금수 조치에 당해만 왔던 유럽이 반격 카드를 준비 중이다. 우라늄부터 반도체까지, EU의 숨겨진 무기들을 살펴본다.
1년 넘게 유럽은 세계 지정학의 '샌드백' 노릇을 해왔다. 동쪽에서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과 반도체 봉쇄, 서쪽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그린란드 탐욕까지. 맞기만 하고 반격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주 트럼프가 새로운 관세 위협을 꺼낸 후, 유럽 각지에서 반격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더 이상 얻어맞기만 할 생각이 없다는 신호다.
우라늄 카드: 트럼프의 아킬레스건
독일 연구진이 제시한 첫 번째 카드는 우라늄이다. 트럼프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원자력 확대 계획의 핵심 재료를 유럽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지오스트래티직 유럽 태스크포스의 조나단 바스 연구원은 "유럽에서 억제 전략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며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명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은 전 세계 저농축 우라늄 공급망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오라노와 독일, 네덜란드의 우라늄 농축 시설들이 미국의 원전 재가동 계획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트럼프가 "거대한" 원자력 계획을 밀어붙이려면 유럽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반도체부터 희토류까지, 숨겨진 무기들
우라늄만이 아니다. 유럽은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여러 경제적 압박 수단들을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ASML은 전 세계 최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90% 이상을 독점 공급한다. 중국이 반도체로 유럽을 압박한다면, 유럽도 장비 수출을 중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리튬 배터리 기술과 자동차 부품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특히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들 기술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변화하는 유럽의 자세
이런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은 경제적 의존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에너지 안보에서 시작된 각성이 이제 전방위적 경제 안보로 확산되고 있다.
브뤼셀의 한 EU 관계자는 "과거에는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했지만, 이제는 경제 자체가 무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있다. EU 27개국의 합의가 필요하고, 경제적 보복이 자국에 미칠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에게는 기회일까, 위기일까
이런 변화는 한국에게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 유럽이 미중 사이에서 독자적 행보를 강화한다면, 한국도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은 유럽의 반도체 장비 제재가 중국 시장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면 배터리와 자동차 분야에서는 유럽과의 협력 기회가 늘어날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유럽에서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 배터리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유럽이 경제 안보를 강화할수록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한국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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