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젬픽을 넘어선 약이 나왔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일라이 릴리의 신약 레타트루타이드가 40주 만에 체중 16.8% 감량에 성공했다. 오젬픽과 마운자로를 뛰어넘는 수치지만, 당뇨 비만 치료의 진짜 과제는 숫자 너머에 있다.
40주, 16.8%. 숫자만 보면 간단하다. 하지만 이 두 숫자가 조용히 흔들고 있는 건 수십조 원짜리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 전체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일라이 릴리가 개발 중인 실험적 신약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가 2형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시험에서 40주 만에 평균 16.8%의 체중 감량 효과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당뇨 치료제를 뛰어넘는 수치다.
일라이 릴리는 이번 결과를 'TRANSCEND-T2D-1' 임상시험을 통해 발표했다. 2형 당뇨를 진단받은 성인 537명이 참여했고, 참가자들의 평균 당뇨 유병 기간은 2.5년이었다. 핵심 지표인 당화혈색소(A1C)는 최대 2.0%포인트 감소했다. 위약 그룹의 감소폭이 0.8%포인트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가장 주목받은 건 체중 변화다. 최고 용량인 12mg을 투여받고 치료를 완료한 환자들은 평균 36.6파운드(약 16.6kg)를 감량했다. 중도 탈락자를 포함한 전체 분석에서도 15.3% 감량이 확인됐다. 특히 치료 기간 내내 체중 감량이 지속됐고, 고원(plateau)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기존 약과 무엇이 다른가
레타트루타이드를 이해하려면 지금의 비만·당뇨 치료제 구도를 먼저 알아야 한다. 현재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건 노보 노디스크의 오젬픽과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다. 오젬픽은 GLP-1이라는 단일 호르몬 경로에 작용하고, 마운자로는 GLP-1과 GIP 두 가지 경로를 동시에 자극한다.
레타트루타이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GLP-1, GIP에 더해 글루카곤(glucagon) 수용체까지, 세 가지 장내 호르몬 경로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주 1회 피하 주사로 투여한다는 점은 기존 약과 같다.
부작용도 확인됐다. 12mg 투여군에서 구역(26.5%), 설사(22.8%), 구토(17.6%)가 보고됐다. 부작용으로 인한 중도 탈락률은 약 5%였다. 비교적 드물게 나타난 이상 감각(dysesthesia) 증상은 대부분 시험이 끝나기 전에 해소됐다. 심혈관 위험 지표인 비H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수축기 혈압도 함께 개선됐다.
현재 레타트루타이드는 아직 어떤 적응증으로도 승인받지 않은 상태다. 임상시험 참가자 외에는 합법적으로 투여받을 수 없다.
왜 지금 이 뉴스가 중요한가
비만과 당뇨는 더 이상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 인구는 10억 명을 넘어섰고, 2형 당뇨 환자는 5억 명 이상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당뇨 유병률은 성인 기준 약 16%에 달하고, 비만율도 꾸준히 상승 중이다.
기존 치료제들이 폭발적 수요를 만들어낸 방식은 이미 증명됐다. 오젬픽과 마운자로는 공급 부족 사태를 겪을 만큼 전 세계에서 처방이 쏟아졌다. 레타트루타이드가 승인을 받는다면, 더 강력한 효과를 앞세워 이 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일라이 릴리는 현재 레타트루타이드 관련 3상 임상시험을 7개 더 진행 중이며, 2026년 말까지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6월 미국당뇨병학회(ADA) 학술대회에서 상세 데이터가 공개된다.
이해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계산
이번 발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입장에 따라 크게 갈린다.
환자와 의료진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2형 당뇨 환자의 경우 비만 치료가 일반인보다 어렵다는 게 오랜 임상적 과제였다. 일라이 릴리 임원이 발표문에서 직접 언급했듯, "혈당 조절과 체중 감량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오랫동안 어려운 과제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다소 복잡하다. 발표 당일 일라이 릴리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고, 오히려 노보 노디스크 주가가 2.3% 하락했다. 시장은 이미 경쟁 심화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 셈이다.
경쟁사, 특히 노보 노디스크 입장에서는 압박이 커졌다. 오젬픽과 위고비로 시장을 선점했지만, 더 강력한 후발 주자가 등장하면 점유율 방어가 쉽지 않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이 경쟁 구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의 한미약품, 동아에스티 등도 GLP-1 계열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어서, 글로벌 기준이 높아질수록 진입 장벽도 함께 올라간다.
건강보험 당국 입장에서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효과가 좋을수록 처방이 늘고, 처방이 늘수록 재정 부담이 커진다. 현재도 GLP-1 계열 약제의 급여 적용 범위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비싼 차세대 약이 등장하면 어디까지 보험을 적용할 것인지 선택이 불가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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