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역 질서의 변화, 협력에서 경쟁으로
20세기 말 자유무역 이상이 무너지고 경제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제로섬 게임의 세계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전략을 분석한다.
20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무역이 새로운 게임의 룰을 따르고 있다. 한때 '자유무역이 모두를 부유하게 만든다'던 약속은 이제 '우리가 이기려면 상대가 져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로 바뀌었다.
무너지는 자유무역 신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 30년간 이어져온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각국은 관세와 보조금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경제 영토를 지키려 한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불평등 심화가 있다. 자유무역의 혜택이 일부 계층과 지역에 집중되면서, 중산층과 제조업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나 시진핑의 '쌍순환' 정책은 이런 국내 정치적 요구에 대한 반응이었다.
한국 경제의 딜레마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40%를 넘는 국가에게 이런 변화는 특히 위험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중 반도체 갈등의 한복판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도, 미국 기술을 단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근본부터 뒤흔들었다. 기업들은 이제 '효율성'보다 '안전성'을 우선하는 공급망 재편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블록 경제의 등장
세계는 점점 더 명확한 경제 블록으로 나뉘고 있다. 서방의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와 중국의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대표적이다. 각 블록은 자신들만의 공급망과 기술 표준을 구축하며 상대를 배제하려 한다.
이런 변화는 기술 패권 경쟁과 맞물려 더욱 복잡해진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각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상대국의 기술 접근을 차단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과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가 대표적 사례다.
중소기업과 소비자의 부담
이런 변화의 피해는 결국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관세가 오르면 수입품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망이 복잡해지면 제품 출시가 지연된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한국의 중소 제조업체들은 이미 원자재 조달 비용 상승과 물류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처럼 가장 저렴한 공급업체를 선택하는 대신, 이제는 '믿을 만한' 공급업체를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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