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한국 경제를 흔드는 방식
이스라엘·미국의 이란 공격이 한국 증시, 환율, 반도체, 석유화학까지 흔들고 있다. 지리적으로 먼 전쟁이 왜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찌르는가?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 그리고 서울의 주유소 앞에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지 4주가 지났다. 전장은 중동이지만, 충격파는 한반도까지 도달했다. KOSPI는 개전 이틀 만에 18% 폭락하며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현재도 전쟁 이전 대비 13%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선을 넘나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서울 시내 정유소 앞에 늘어선 줄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화된 경제가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에너지: 한국의 아킬레스건
한국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거의 전량 수입한다. 그중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서 들어오는 석유가 62%, LNG는 20%가 중동에서 온다. 이란이 해협 봉쇄 의지를 공식화한 지금,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경제적 취약성의 지도다.
정부는 200일치 이상의 전략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와 협력해 2,246만 배럴을 시장에 방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LNG 상황은 다르다. 법정 비축 의무는 9일치에 불과하고, 카타르 LNG 생산시설이 이란의 공격으로 손상되어 전체 생산량의 17%가 향후 3~5년간 오프라인 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사태로 전 세계 LNG 생산의 19%가 중단됐다고 추산한다.
연료유 가격은 개전 이후 87.5% 급등했고, 항공유는 두 배로 뛰었다. 대한항공은 일부 노선의 유류할증료를 세 배로 올렸다. 서울시는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정제유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고, 생필품 23개 품목에 대한 가격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나프타 한 방울이 세탁기를 멈춘다
에너지보다 덜 알려졌지만, 어쩌면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바로 산업 원자재 공급망의 붕괴다.
한국 산업 공급망의 핵심 품목 41개 중 70%가 중동(특히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에서 수입된다. 그중 가장 즉각적인 타격을 받은 것은 나프타다. 나프타는 한국 수출의 약 7%를 차지하는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데, 한국은 이를 70% 이상 중동에서 수입한다.
이미 LG화학은 가소제 수출에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고, 여천NCC도 뒤를 따랐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주요 생산업체들도 공급 제약이 지속되면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비닐봉투 같은 기초 소비재부터 자동차 부품, 의료용 플라스틱, 조선용 강판 절단, 세탁기 부품까지—나프타 하나가 끊기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산업의 지형도가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나프타를 빠르게 중동산으로 대체했던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다시 러시아 수입 재개를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반도체: 보이지 않는 균열
한국 경제의 심장부인 반도체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의 위기는 아니지만, 균열의 조짐은 뚜렷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헬륨의 64.7%를 카타르에서, 브롬의 97.5%를 이스라엘에서 수입한다. 현재 헬륨 재고와 시장 잉여분이 있어 당장의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큰 위협은 수요 측면에서 온다. AI 칩에 사용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최대 수출처는 대만이다. 대만은 전력의 53.3%를 LNG로 생산하는데, 4월 말이면 재고가 바닥날 가능성이 있다. TSMC 공장이 전력 부족으로 가동을 멈춘다면, HBM 수요는 직격탄을 맞는다. 중동에 건설 중이던 AI 데이터센터들도 공격을 받고 있어—UAE에서 아마존 데이터센터가 피격됐다—이 지역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 자체가 재검토될 수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
전문가들은 시나리오별 영향을 이렇게 본다. 전쟁이 단기에 끝나면 현재의 충격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3개월 지속되면 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하고, 1년 이상 이어지면 성장률이 0%에 수렴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경계선에는 스태그플레이션—성장 정체와 물가 상승의 동시 발생—이 기다리고 있다.
중동은 한국 수출의 3%에 불과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에게는 전체 글로벌 판매의 10%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전쟁이 지역 경제를 위축시키면 이 숫자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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