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도 흔들린다
EU가 중동 해군 임무 강화를 논의 중이다. 이란발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세계 원유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이 한국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는 중동에서 온다. 그 원유가 지나는 길목, 호르무즈 해협은 폭이 가장 좁은 곳에서 불과 33킬로미터다. 이 좁은 수로 하나가 막히면, 한국의 정유 공장은 멈추고, 주유소 앞엔 줄이 늘어선다.
지금 그 해협 주변에서 긴장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EU, 중동 해군 임무 강화 논의에 나서다
유럽연합(EU)은 현재 운영 중인 중동 해군 임무의 역할과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홍해와 아라비아해 일대의 상선 보호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EU는 이미 아스피데스(Aspides) 작전을 통해 홍해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부터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2024년 초 출범한 이 작전은 지금까지 수백 척의 선박을 호위했다. 하지만 이란의 직접적인 군사 행동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존 임무의 틀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유럽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논의의 배경엔 이란 핵 협상의 교착, 이스라엘과의 긴장 지속, 그리고 미국의 중동 정책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이 중동 개입에 선택적 태도를 보이면서, 유럽은 독자적인 해상 안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왜 지금, 왜 중요한가
이 뉴스가 단순한 유럽의 군사 외교 이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약 1,700만 배럴,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20%에 달한다. 여기에 액화천연가스(LNG)까지 더하면, 이 해협은 사실상 세계 에너지 시장의 심장부다. 2019년 이란이 영국 유조선을 나포했을 때, 브렌트유 가격은 하루 만에 3% 이상 뛰었다. 실제 봉쇄가 아닌, 단순 나포 하나에도 시장이 반응했다.
한국 입장에서 이 숫자들은 추상적이지 않다. 한국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99.8%에 달하며, 중동산 비중이 절대적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한국의 연간 원유 수입 비용은 약 80억 달러 늘어난다는 추산도 있다. 이는 곧 소비자 물가 상승, 기업 원가 압박,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진다.
승자와 패자
EU의 해군 임무 강화가 실현된다면, 단기적으로는 해상 보험료가 안정되고 선박 운항 경로 우회에 따른 물류비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미 홍해 위기 이후 컨테이너 운임은 한때 400% 이상 급등했고, 국내 수출 기업들은 납기 지연과 물류비 부담을 동시에 떠안았다.
수혜를 볼 수 있는 쪽은 안정적 원유 공급에 의존하는 한국, 일본, 인도 같은 아시아 에너지 수입국들이다. 반면 이란은 자국 인근 해역에서 서방 군사력이 강화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협상 공간을 좁히고 긴장을 오히려 높이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유럽 방산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다. 레오나르도(Leonardo), 탈레스(Thales) 등 유럽 방산 업체들은 임무 확대에 따른 장비·서비스 수요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EU 회원국 납세자들은 늘어나는 군사 예산 부담을 지게 된다.
다른 시각들
모두가 EU의 개입 강화를 환영하는 건 아니다. 일부 유럽 국가들, 특히 이란과 외교적 채널을 유지하고 싶은 국가들은 군사적 존재감 확대가 외교적 해법을 어렵게 만든다고 우려한다. 중국은 자국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도 이 해협을 통하지만, 서방 주도의 해상 질서 강화에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중동 해상 안보 협력에 관여하고 있다. 과거 청해부대를 아덴만에 파견한 경험이 있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이 지역의 안정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이란과의 외교 관계, 그리고 미·중 사이에서의 전략적 균형을 고려할 때 한국의 선택지는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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