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해안에서 벌어진 총격전, 1960년대 냉전이 되돌아왔나
무장 침입자들과 쿠바 해안경비대 간 총격전 발생. 미국의 석유 봉쇄와 극단주의 망명자들의 부활로 냉전 시대 긴장이 재현되고 있다.
10명의 무장한 남성들이 탄 보트가 쿠바 영해로 침입했다. 그들의 목적은 공산주의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사보타주와 테러였다. 쿠바 해안경비대가 접근하자 침입자들이 먼저 발포했고, 경비대의 응사로 4명이 사망, 6명이 부상당했다. 2026년 2월 25일, 아바나 앞바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다. 미국이 쿠바에 대한 사실상의 '완전 석유 봉쇄'를 진행하는 가운데 발생한 것으로, 1960년대 냉전 시대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되살아난 망명자 무장단체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1959년 이후, 미국은 쿠바 정부에 대해 적대적 정책을 펼쳤다. 1961년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CIA가 조직한 '피그스만 침공'은 쿠바 망명자들을 이용한 대표적인 정권 전복 시도였다.
침공이 실패한 후에도 CIA는 '몽구스 작전'을 통해 쿠바 망명자 무장단체들을 지원했다. 알파 66과 오메가 7 같은 조직들은 1970년대 말까지 쿠바 정부에 대한 무력 투쟁을 계속했다. 심지어 1976년에는 민간 여객기 쿠바나 455편을 폭파해 73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쿠바와의 화해를 지지한 쿠바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암살과 폭탄 테러까지 자행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후 테러는 줄어들었지만,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에서는 여전히 주말마다 군사 훈련을 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존재한다.
트럼프의 압박과 루비오의 강경론
최근 이런 무력 침입 시도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미국-쿠바 관계의 급격한 악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에서 버락 오바마의 쿠바 화해 정책을 뒤집고 1960년대 이후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조 바이든도 이 제재를 대부분 유지했고, 트럼프가 재집권한 지금은 베네수엘라로부터의 석유 공급까지 차단했다.
특히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쿠바를 '실패한 국가'라고 규정하며 정권 붕괴가 임박했다고 거의 매일 예측하고 있다. 이런 백악관의 발언들은 쿠바계 미국인 극단주의자들에게 '때가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쿠바는 여전히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해안선을 방어할 능력을 갖고 있다. 이번 총격전이 그 증거다. 정권에 균열의 조짐도 없고, 조직화된 반정부 세력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 봉쇄의 딜레마
미국의 석유 봉쇄로 쿠바 경제는 전례 없는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것이 정권 교체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많은 쿠바인들은 여전히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갖고 있으며, 미국의 요구에 따라 정치·경제 체제를 바꾸는 것은 국가 주권 포기로 받아들인다.
워싱턴과 아바나 사이에 외교적 합의가 없는 한, 쿠바 경제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이는 쿠바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망명자들이 아바나의 약점을 노려 무력 모험을 시도하도록 부추길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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