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충돌론 30년, 헌팅턴이 놓친 것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30년을 맞았다. 9/11 이후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 이론으로 여겨졌지만,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30년 전 출간된 한 권의 책이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외교관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다.
하버드대 정치학자였던 헌팅턴은 1996년 이 책에서 냉전 종료 후 새로운 갈등 구조를 예측했다. 이데올로기 대신 종교와 문화가 충돌의 축이 될 것이라고 봤다. 서구, 중화, 일본, 이슬람, 힌두, 슬라브-정교회,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문명이 "문화적 단층선"을 따라 충돌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적중한 듯 보였던 예언들
9/11 테러가 터지자 헌팅턴의 예언은 현실이 된 듯 보였다. 알카에다가 3천 명의 미국인을 살해했고,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이슬람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다. 마드리드와 뮌헨, 스트라스부르와 스톡홀름에서 테러가 이어졌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대규모 학살까지 발생했다.
러시아도 마르크스주의 대신 정교회의 십자가 아래 민족주의로 무장했다. 중국은 서구에 전방위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세르비아인이 무슬림을 공격했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정교도와 서부의 가톨릭도가 헌팅턴이 그린 바로 그 단층선을 따라 충돌했다.
현실은 달랐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헌팅턴의 예측은 빗나간 부분이 많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종교 기반 문명 간 충돌이 아니라 강대국 간 경쟁이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2강 구도에서 중국이 합류한 3강 구조로 바뀌었을 뿐이다.
헌팅턴이 새로운 거인으로 지목했던 불교-도교 문명의 일본은 무대에서 거의 사라졌다. 14억 인구와 핵무기를 보유한 인도도 아시아를 지배하기는커녕 미국,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며 실리를 챙기고 있다.
유럽은 어떨까? 20조 달러 GDP를 자랑하는 경제 거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들러리다. 27개 회원국이 하나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4천300개 핵무기 앞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소규모 핵 억지력으로는 역부족이다.
이슬람 내부의 분열
이슬람 문명의 경우 헌팅턴이 언급한 "피의 국경"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존재한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100만 명이 죽었다. 바샤르 알아사드의 시리아에서는 2014~2024년 35만 명이 사망했다. 예멘 내전에서도 2014년 이후 40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역사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17세기 30년 전쟁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간 충돌로 800만 명이 죽었다. 중국 내전에서는 1천만 명, 마오쩌둥 치하에서 4천만 명이 희생됐다. 이 모든 참극을 문명 충돌로 설명할 수 있을까?
권력 정치의 현실
진짜 원인은 권력, 영토,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이해관계다. 30년 전쟁에서 가톨릭 프랑스가 개신교 독일 제후들과 손잡고 가톨릭 합스부르크 왕조와 싸운 이유는?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이슬람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삼키려는 이유는 종교가 아니라 지배권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정교회 문화권임에도 말이다. 반대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단의 평화협정, 최근 모로코·수단 등과의 아브라함 협정은 어떻게 설명할까? 공통의 적 이란과 그 하수인 하마스, 헤즈볼라 때문이다.
같은 문화권인 남북한, 중국과 대만도 적대 관계다. 차가운 국가 이익이 문화와 신앙을 압도한다.
서구 내부의 문화전쟁
흥미롭게도 헌팅턴 자신도 2004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책에서 자신의 이론을 수정했다. 라틴계와 무슬림의 무분별한 이민이 미국을 "민족, 문화, 언어"로 분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며, 개신교 가치와 영어를 국가 언어로 재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헌팅턴은 가장 깊은 단층선이 문명 간이 아니라 문명 내부에 있다고 인정했다. 오늘날 미국을 지배하는 갈등도 "각성한" 진보와 "반각성" 보수 간의 문화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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