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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없는 자들의 제국, 카다시안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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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없는 자들의 제국, 카다시안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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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월터스는 2011년 카다시안 가족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했다. 14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틀렸다. 주목 경제 시대에 재능의 정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다." 2011년, 전설적인 인터뷰어 바버라 월터스는 카다시안 자매들 앞에서 이 말을 거의 사실 확인하듯 내뱉었다. 그 자리는 원래 칭찬의 자리였다. 월터스가 직접 선정하는 '올해 가장 매혹적인 인물 10인'에 카다시안 가족이 포함된 것을 기념하는 인터뷰였다. 하지만 월터스는 선물을 건네면서 동시에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연기도, 노래도, 춤도 없다. 용서해달라지만, 재능이 없다.

클로이 카다시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잖아요." 킴은 그 뒤를 받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세요?"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인터뷰에서 틀린 사람은 월터스였다.

재능의 재정의: 왜 그들은 계속 살아남았나

카다시안 가족의 첫 번째 리얼리티 쇼 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이하 KUWTK)는 2007년 시작됐다. 비평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부유하고 예쁜 사람들이 더 부유하고 예뻐지려는 노력을 담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요약이었다. 시청자들이 열광할수록 그 열광은 시청자들에 대한 기소장처럼 읽혔다. '저걸 왜 봐?' 라는 질문은 사실 '당신은 왜 그런 걸 봐?'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KUWTK는 20시즌을 버텼다. 팬과 혐오 시청자가 함께 만들어낸 숫자였다—상업적으로는 둘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최종화가 방영될 무렵, 이 가족은 단순한 유명인을 넘어 하나의 복합기업이 되어 있었다. 킴 카다시안의 셰이프웨어 브랜드 Skims는 기업가치 50억 달러. 카일리 제너의 화장품 회사는 2019년 지분 절반 이상이 6억 달러에 팔렸다.

심리치료사이자 저자인 MJ 코리는 신작 Dekonstructing the Kardashians에서 이 현상을 문화적 텍스트로 읽어낸다. 카다시안 가족은 단순히 유명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미디어 문법을 가장 먼저, 가장 능숙하게 체득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코리는 그들을 롤랑 바르트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미지는 집단적으로 저작된다—즉, 의미는 생산자가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만든다.

이것이 바로 월터스가 놓친 지점이다. 카다시안 가족은 재능이 없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재능이 무엇인지가 바뀌는 순간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주목 경제의 정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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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재능의 논리는 이랬다. 탁월한 무언가를 갖고 있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준다. 관심이 명성이 된다. 명성이 돈이 된다. 이 흐름에서 재능은 원인이고 돈은 결과였다.

주목 경제는 이 순서를 뒤집었다. 관심 자체가 자산이 됐다. 사람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광고가 따라오고, 광고가 따라오는 곳에 브랜드가 생기고, 브랜드가 생기는 곳에 제국이 선다. 카다시안 가족은 이 논리의 가장 완성된 구현체다. 그들이 파는 것은 다이어트 보조제도, 화장품도, 속옷도 아니다. 그들이 파는 것은 시선이다—그리고 그 시선을 끌어당기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의 재능이다.

코스모폴리탄은 2015년 카다시안 가족을 "미국의 퍼스트 패밀리"라고 불렀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코리는 이것이 정확한 진단이라고 본다. 선출되지 않았지만 언어와 취향과 미적 기준을 형성한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을 후원했다면, 카다시안 가족은 자기 자신을 후원한다. 카네기가 철강을 팔았다면, 카다시안 가족은 빈 공기를 판다—그리고 그 빈 공기로 제국을 쌓았다.

그들의 힘이 불편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카다시안의 성공은 미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신화 하나를 공격한다. 시장은 공정하다, 재능은 보상받는다, 노력은 결실을 맺는다는 능력주의의 신화. 카다시안 가족은 그 신화가 신화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증명을 보면서 분노하거나 매혹된다—어느 쪽이든 계속 본다.

우리가 계속 보는 이유

코리의 책이 흥미로운 것은 카다시안 가족을 변호하거나 비판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을 거울로 사용한다. 그 거울에 비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왜 보는가? 코리는 인간 사회가 공유된 이야기와 아이콘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카다시안 가족은 그 역할을 한다. 그들은 과장되고, 인공적이며, 끊임없이 변신한다. 그들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다—스핑크스처럼. 그 모호함이 참여를 만든다. 인스타그램에서 당혹감은 종종 인게이지먼트와 같은 말이다.

한국에서도 이 현상은 낯설지 않다. 블랙핑크제니가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로 패션 브랜드 품절 사태를 만들고, 아이브장원영이 특정 음료를 마시는 사진 한 장으로 그 제품의 판매량을 바꾸는 것—이것은 카다시안 모델의 한국어 번역이다. 재능이 먼저가 아니라, 시선이 먼저인 세계.

킴 카다시안은 한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스스로를 객체화하더라도, 나는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다." 이 발언은 수많은 분석 글을 낳았다. 그것이 바로 요점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계속 보는 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본다.

본 콘텐츠는 AI가 원문 기사를 기반으로 요약 및 분석한 것입니다. 정확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원문 확인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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